고추 이식은 품앗이와 함께

  • 입력 2016.02.28 15:03
  • 수정 2016.02.28 15:18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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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안혜연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 고추주산지인 경북 안동에서 고추 모종 이식 작업이 시작됐다. 지난 23일 예안면 주진리의 한 하우스에서 마을 주민들이 포트에 고추 모종을 이식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3일 오전, 경북 안동시에서도 깊숙이 들어가야 갈 수 있는 예안면 주진리에 위치한 삼산마을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박무상(54), 공은희(54)씨 부부의 하우스를 방문했다. 

오늘은 고추 모종 이식 작업을 하는 날. 하우스는 이른 시간부터 일을 도우러 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아주머니들에게 “농활 왔습니다”하고 인사하니 공은희씨가 자연스레 조그만 방석을 주며 자리를 마련해 이식하는 법을 알려주신다. 

▲ 사람 손톱만한 고추 모종을 포트로 이식하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 안혜연 기자가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포트의 흙을 다지고 있다. 안혜연 기자

고추 모종 이식은 2월 초 파종해 흙 위로 막 올라오기 시작한 고추 모종을 포트에 하나씩 옮겨 심는 작업이다. 뿌리가 끊어지지 않게 모종을 조심스럽게 뽑아내서 흙이 채워진 포트에 잘 심으면 된다.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초심자도 할 수 있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이 날 하우스에는 박씨 부부를 포함해 15명 정도의 인원이 함께했다. 처음엔 하루 인력으로 고용한 분들인 줄 알았는데 웬걸, 모두 동네 주민들이었다. 삼산마을 아저씨 한 분, 아주머니들, 할머니들. 

요맘때 이곳의 주 일거리는 고추 파종과 이식, 사과 가지치기 작업이다.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 많이 바쁘지 않아 일손 여유가 있는 시기여서 시간이 남는 동네 이웃들이 서로서로 일을 도와준다고. 특히 고추 이식은 일손이 많이 필요해 함께 작업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생겨나는 농촌 공동체의 가치도 소중하다. 

박무상씨는 “일만이 목적이 아니고 농사 시작하기 전에 모여서 못 다한 얘기도 하고, 누구 집은 어떻다, 무슨 일이 있다더라 하는 자리의 의미도 크죠”라고 말했다. 

▲ 추리닝을 입고 포트를 쌓아놓고 일방석에 앉아 일하는 모습이 꽤 자연스럽다. 맨 오른쪽이 안혜연 기자. 한승호 기자

이 날은 박씨 부부의 고추 모종뿐만 아니라 동네 이웃집의 모종도 같이 작업하는 날이었다. 이식한 모종은 2차 이식이 있을 때까지 같은 하우스에서 재배한다. 

작업 시작부터 아주머니들의 수다 삼매경이 시작됐다. 농사, 자식 결혼, 내일 마을에서 열리는 잔치 준비 등 화제가 무궁무진하다. 그러다 뜬금 처음 보는 젊은이들이 궁금하신지 “그런데 저기는 누군교?”하고 질문도 던지고, 고추 농사를 짓는 분들이 대부분이기에 “언니 이따 우리 집도 도와주소”라고 서로 부탁도 하신다. 

한창 네 포트 째를 심고 있으니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나가며 “이쁘게 잘 심네”라며 칭찬을 해주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잠시 난 농사 체질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허리와 목이 아파 자세를 바꿨다. 쭈그려 앉았다가 한 쪽 다리를 뻗었다가 양반다리를 해 봤다가 이리저리 편한 자세를 찾고 있으니 아주머니 한 분이 와서 “포트를 높이 쌓아서 하면 허리가 덜 아파”라며 내 앞에 포트를 차곡차곡 쌓아주신다. 

그러던 도중 하우스에 잠깐 들린 한 어르신께서 나를 안동 공판장에서 본 적이 있다며 아는 체를 하셨다. 그러고 보니 왠지 취재 갔을 때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확실하게 기억은 안 났지만 반갑게 인사해 주시니 나도 무척 반가웠다. 

▲ 안혜연 기자가 마을 주민들과 나란히 앉아 조심스럽게 고추 모종을 포트로 이식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다 채운 포트는 박무상씨가 바닥에 가지런하게 줄지어 내려놓고 물을 뿌려준다. 이렇게 이식을 마친 고추 모종은 4월 20일에서 5월 10일 사이에 하우스 밖으로 나가 밭에 심겨진다. 손가락보다도 작은 모종이 큰 고추나무가 된다니 새삼 신기할 따름이다. 

오전 일찍 시작된 작업은 낮 12시도 안 돼 끝났다. 처음 하우스에 들어와 쌓여있는 포트를 봤을 땐 시간이 꽤 걸리겠다 싶었는데 인원이 많으니 반나절 만에 후딱 마무리됐다. 일한 후 박무상씨의 집에 모여 함께 만들어 먹은 밥도 꿀맛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농활을 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몇 달 노동의 대가로는 농산물이 정말 싸다는 것이다. 올해 하반기 고추를 수확할 무렵에는 농민들이 땀 흘린 만큼의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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