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폐업지원제도, 다른 품목 가격 폭락 일으킬 수 있어”

농민들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있어야”

  • 입력 2016.02.28 14:40
  • 수정 2016.02.28 15:19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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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안혜연 기자]

▲ 경북 영천시의 한 포도 폐원 농장. 포도나무를 베어내 황량한 빈 밭만이 남았다.

전국 최대 포도 주산지 중 하나인 경북 영천에서는 지난해 836명이 포도 폐업을 신청했다. 신청 면적은 287ha. 여기에 폐업 신청을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나무를 베어내거나, 포도의 일부를 작목 전환한 경우까지 감안한다면 감소 면적은 이보다 더 늘어난다.

영천시 금호읍 신월리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 박재호(51)씨는 올해부터 포도 일부를 여름사과로 전환할 계획이다. 박씨는 “포도 가격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재작년엔 30%, 지난해엔 재작년에 비해 20% 하락했다”며 “작년에 포도 5kg 가격이 3,000~4,000원까지 떨어져 박스비, 운송비, 수수료를 떼면 남는 게 없을 정도였다. 도저히 답이 안 나와 일부 작목 전환을 결심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박씨 같은 경우, 포도 농사를 모두 접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폐업 신청 대상자가 될 수 없다. 폐업 신청은 그 품목의 재배를 전면 포기해야 가능하며, 다시 해당 품목을 재배하려면 폐업 신청 후 5년이 지나야 한다.

금호읍 호남리에서 시설포도 농사를 짓다가 지난해 폐원 신청을 한 김진욱(74)씨는 “9년 전 쯤 복숭아 폐업 신청을 했다가 이번엔 포도 폐업 신청을 하게 됐다”며 “혼자 작업하다보니 포도 농사가 버겁고, 가격도 좋지 않아 폐업을 결정하게 됐다. 포도밭에는 복숭아를 심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폐업지원제도, 근본적 해결책 ‘의문’

포도 폐업을 한 농민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이후 무엇을 심어야 하느냐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주요 대체품목은 복숭아·자두·살구다. 이에 따라 농업관측센터는 올해 복숭아 재배면적이 지난해보다 5% 증가한 1만7,540ha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포도 폐업 농가가 많다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대체품목 묘목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농민들이 우려하는 점은 대체품목 식재가 과열되다보면 향후 대체 품목들도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원래부터 이 품목을 심고 있던 농민들도 피해를 보게 된다.

금호읍 신월리에서 8~9년 전 포도 폐업 신청을 하고 토마토 농사로 전환한 전성윤(50)씨는 “다른 농작물 시세만 안 좋아질 것이다. 전라도에서도 복숭아 모종이 많이 팔렸다는데, 향후 물량을 어떻게 감당할 생각인지 모르겠다”며 “폐업지원제도 파급 효과는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 국산 포도 면적이 줄은 만큼 가격이 상승해야 하는데, 그 자리를 수입포도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제도가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이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기주 농림축산식품부 원예경영과 전문관은 “농식품부도 대체 품목 과잉 문제 대비를 위해 폐업대상 농가를 대상으로 후기작을 조사 중이고, 이를 통해 특정 품목에 집중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폐업 신청 농민은 대부분 고령농이고, 새로운 품종보다는 ‘대세’에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금호읍 원기리에서 포도농사를 짓다가 지난해 폐업 신청을 한 김성호(70)씨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서 폐업 신청을 한 것은 아니다. 정부에서 보조를 해 준다고 해서 막연히 한 것이다”며 “젊고 노동력이 있으면 품목 개발도 하고 연구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아 옆집, 지인들이 하는 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거의 대다수가 나와 같을 것이다. 올해는 복숭아를 심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진우 영천시농민회 사무국장은 “포도폐원지업 사업은 피해를 입은 한 개인에게 목돈을 쥐어줄 순 있지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농업이 지속적으로 자생할 수 있는 다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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