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병아리 감별사②] 감별사 김 씨의 아메리칸 드림

  • 입력 2016.02.28 01:3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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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김동일. 1953년생. 경기도 광주 토박이다. 스무 살 남짓이던 1970년대 중반의 어느 날, 그는 시외버스를 타고 동대문 근처 이스턴 호텔 맞은편에 있던 ‘한미병아리감별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외국바람이 든 것이다. 얼마 안 된 땅뙈기에 여러 형제가 매달려 봤자 대물림 해온 가난을 ‘사이좋게’ 나누는 처지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기술을 배워 외국으로 나갈 궁리를 했다. 그가 문을 두드린 병아리감별학원의 이름이 ‘한미(韓美)’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는 미국에 갈 꿈을 꾸었다. 꿈만은 아니었다. 그의 외사촌 형이 일찌감치 미국으로 진출해서 버지니아 주 어딘가에서 감별사 활동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나흘만 일해도 직장 다니는 미국인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였다.

학원 등록 첫날부터 감별법 실습에 들어갔다. 부화장에서 가져온, 갓 깬 실습용 병아리가 들어있는 상자를 오른편에 놓고 앉는다. 그 중 한 마리를 오른손으로 집어 올려 왼손으로 옮긴 다음 오른손으로 항문을 벌리면 좁쌀만큼의 똥이 나오는데 그걸 일단 탈분통에다 털어낸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항문 안쪽을 만진다. 좁쌀의 3분의1 만큼이나 작은 미세한 돌기가 감촉되면 고놈은 수평아리다. 수놈은 필요 없으므로 폐기처분용 통에다 내던지고 다시 다음 병아리를 집어 든다.

“병아리 감별은 시간싸움이다. 상자에 있는 병아리를 ‘잡고’ 왼손으로 ‘옮기고’ 똥을 ‘탈분하고’ 항문을 ‘개장’해서 암수를 확인하는 순서로 진행되는데, ‘잡고-옮기고-탈분하고-개장하는’ 작업을 3초 이내에 해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활동하는 병아리 감별사 대부분이 왜 모두 일본인과 한국인인 줄 아나? 양놈들은 손이 크고 거칠어서 미세한 감촉으로 이뤄지는 그 작업을 하기엔 어림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알겠나!”

강사가 열변을 토하였다. 그런데 상자 속의 병아리들은 제멋대로 서있기 때문에 고놈을 집어 들어서 왼손으로 옮기고 항문을 여는 동작은 여간 어렵지가 않았다. 병아리가 9시 방향으로 서 있는 경우가 가장 쉽다. 하지만 3시나 6시나 12시 방향으로 서 있는 놈들을 집어올려 왼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신속하게 방향을 바꿔 항문을 열 수 있어야 한다. 김동일은 학원이 파하고 광주대단지로 가는 시외버스에 눈을 감고 앉아서는, 바로 그 ‘잡고-옮기고-탈분하고-개장하는’ 동작을 빈손으로 끊임없이 반복하였다. 승객들이 수군거렸다.

“아, 청각 장애자들은 마음속으로 하는 말도 수화로 하나봐.”

학원에서 실습용으로 사용한 병아리는 수업이 끝나면 쓰레기 취급해서 그냥 내다버렸다. 그 중에는 한참동안이나 살아 있는 놈도 있었다. 버려지는 병아리가 아까웠으므로 김동일은 죽은 병아리 몇 마리를 가져다가 여차보기로 돼지우리에 넣어주었는데 돼지가 환장을 했다. 다음 날부터는 아예 학원의 실습용 병아리는 그가 도맡아 처분하였다. 덕분에 그의 집에서 키우던 돼지는 하룻밤 자고나면 엉덩이에 주먹 살이 날아와 붙었다.

넉 달을 배우고 난 뒤에는 부화장으로 가서 실습을 했다. 일정기간의 실습이 끝나고 드디어 대한양계협회에서 주관하는 병아리감별사 자격시험을 치렀다. 개인에게 지급된 500마리의 병아리를 35분 안에 감별하여 98퍼센트의 적중률을 보여야 합격이었다. 100마리를 감별하는 데에 7분을 넘어서는 안 되었다. 드디어 김동일은 감별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였다.

국내 부화장에서 얼마 동안 기술을 숙련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외사촌이 초청장을 보내왔다. 외사촌 형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흑석동에 와서 나하고 같이 일하자.”

김동일은 두 말 없이 그러마하였다. 김동일의 외사촌 형이 병아리 감별 활동을 하던 곳이 버지니아 주에 있는 ‘블랙스톤’이라는 마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흑석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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