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그는 자신을 천생 노동자라고 밝혔다. 구두닦이로 시작해 보일러공으로 60여년 가까이를 기름밥 먹으며 노동자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지난 11일부터 걷고 있다. 전남 보성에서 출발해 서울에 도착하는 16박 17일간의 도보순례 전 일정에 동참하고자 가야할 길을 되돌아 서울에서 보성으로 내려왔다.
올해 나이 여든하나, 최종대 할아버지. 지난 17일 그는 전북 김제시 금산면사무소에서 전주시 풍남문으로 향하는 1번 국도를 걷고 있었다. 도보순례단의 최고령자로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 민주주의 회복!’이 새겨진 연두색 조끼를 입고 행진 대열 선두에 선 그는 정면을 응시한 채 묵묵히 걸었다. 시선이 가 닿은 정면엔 백남기 농민의 환한 미소가 담긴 사진이 선두 방송차량 후미에 부착돼 있었다.
본인보다 열 살이나 어린 후배,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백남기 농민의 기적 같은 회복을 빌며 도보순례에 참여한 그는 “우리라는 틀 안에서 농민과 노동자는 결국 하나가 아니겠는가”라며 그의 걸음걸음이 하등 이상할 게 없다고 반문했다.
“백남기 후배가 못 다한 일에 함께 하고 싶었고 우리 주권을 찾는데도 한 몫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참여했지. 무엇보다 백남기 후배의 가족들이 (도보순례를 보며) 위로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커.”
20대 청년에게도 버거울만한 전국순례길이건만 그는 스스로 “완주가 목표”라고 내세울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매일 30여km를 걷는 강행군에 힘이 부칠 법만도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는 "의지력으로 버틴다"며 좀처럼 물러섬이 없다. 도보순례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조차 그의 ‘오래된 젊음’ 앞에 공경과 찬사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22km에 달하는 이날의 도보순례도 7시간 여 만에 완주한 그는 풍남문 앞에서 푹 눌러 쓴 모자를 벗었다. 흰 백발과 이마 사이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지는 햇살에 반짝였다.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 민주주의 회복! 백남기 농민 살려내라!’ 도보순례는 앞으로 열흘(17일 기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