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만드는 농민②] 전북 순창 ‘미나리 엄마아빠’ 김기열·전명란 부부

“미나리와 맺은 인연, 이제는 주변과 함께”

  • 입력 2016.02.21 14:52
  • 수정 2016.02.21 15:06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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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WTO, FTA 등 개방농정으로 인해 암울한 먹구름이 드리워진 농업·농촌의 현실 속에서 대안 경제와 패러다임의 전환, 새로운 철학 등의 해법이 절실하다. ‘희망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농민을 찾아 농업·농촌이 행복해지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려 한다. 매달 1회씩 게재한다. 편집자 주

▲ 가이아 농촌교육농장의 ‘미나리 엄마아빠’ 김기열·전명란 부부가 미나리 효소가 담긴 장독대를 살피며 밝게 웃고 있다. 김씨는 “미나리와 평생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던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며 옛기억을 들춰냈다. 한승호 기자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1999년 겨울, 전북 순창군 풍산면 두승리에 수상한 신혼부부가 나타났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던 이들이 농사는 뒷전인 채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기 일쑤니 마을 어르신들의 시선을 끄는 게 당연할 터. 결혼한 지 1년 만에 첫 아이와 함께 귀농을 선택한 김기열(50), 전명란(44) 부부의 얘기다.

이들 부부가 김 씨의 고향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지은 지도 16년. 농부가 된 그들에게 이제 귀농인이라는 이름은 낯설기만 하다. 지난 16일 ‘행복한 농부 부부’, 그리고 ‘미나리 엄마아빠’로 불리는 이들을 찾아 그 사연을 확인했다.

귀농생활의 시작은 첫 아이와 함께였지만 지금은 아들 둘, 딸 셋을 둔 대가족이 됐다. “도시에 있었다면 아마 가족계획을 세웠겠지만, 농촌생활의 큰 매력은 자유로운 삶이잖아요. 그 속에서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됐습니다. 가족에 대한 계획이나 고정관념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대로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다섯 아이가 생겼죠. 정말 잘했어요(웃음).”

자연에 대한 관심과 흥미,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갈망은 이들 부부의 발걸음을 농촌마을로 이끌었다. 김씨는 “둘 다 살아있는 생명을 키우는 걸 좋아했고 재미있게 살고 싶어 내려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 씨는 “IMF 경제위기로 어려운 상황에서 몸은 고되고 잠은 못자고, 왜 사는지 모르겠더라. 삶의 보람도 없었다. 이렇게 살 바에 시골에서 살자고 생각해 먼저 제안했다”고 기억했다.

이들이 처음 부딪힌 문제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옆집 숟가락 젓가락 수까지 꾀고 있는 농촌마을에서 서울생활을 접고 내려온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우리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었지만, 부모님들 마음이나 시골 어르신들 생각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뼈 빠지게 농사지어 키운 자식이 낙향했다는 시선이 따가웠어요. 어머님에게 누가 될까봐 걱정도 됐구요.”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사는 것을 포기한 건 아니다.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에 자리를 잡은 만큼 이들 부부가 처음 선택한 작목은 고추였다. 김씨가 배운 농사를 잘 짓는 법은 “고추가 어느 만큼 자라면 어떤 약을 얼마 만큼 쳐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또 “농약 이름을 줄줄 외는 어르신이 있을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일반적인 농법보단 자연농업에 매력을 느낀 김씨는 조항규 박사의 자연농업을 읽고 충북 괴산에서 교육도 받곤 곧바로 실전에 돌입했다. “당시 주변이 자연농업이나 친환경농업의 불모지였어요. 주변에선 농사도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이상한 농업을 한다고 수군거렸죠.” 그럴 법도 한 게 초짜농부들이 산에서 낙엽을 끌어와 소똥과 토착미생물을 섞어 밑거름을 만들고, 왕겨를 수북이 쌓아놓고 숯탄을 만드는 모습은 생경하기만 했다.

이들의 무모한 도전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기가 막히게 잘 됐어요. 고추가 어마어마하게 자라서 주렁주렁 열렸죠.”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들이 농사를 지은 땅은 섬진강변에 자리 잡은 비옥한 토지였지만 가장 지대가 낮아 여름 장마철이 되면 침수가 끊이지 않았다. 3~4년 동안 고추농사를 지었지만 천재지변을 이겨낼 순 없었다. “미쳤다. 거 봐라 농약을 썼어야지”라는 등의 입방아가 마을 정자에서 끊이지 않았다. 김씨는 “힘들게 새로운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돈을 벌었더라면 주변에서 인정을 받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고추농사는 실패했지만, 자연농법으로 인해 비옥한 토지가 만들어지며 전화위복의 발판이 됐다. 이들 부부는 고민 끝에 물이 들어와도 키울 수 있는 미나리를 선택했다. 이후 일이 술술 풀렸다. 김씨는 “수확된 미나리가 좋다고 소문이 나 장에서 판매를 하는 상인들도 농장에 와 서로 사갈려고 줄을 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농사를 시작하곤 5년 만에 처음 돈을 만져봤죠. 저녁을 돈 세는 재미로 보내보기도 했어요. 그 때 영농일기에 미나리와 평생 함께하겠다고 다짐을 했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이듬해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 무농약 인증을 바로 받았고, 광주 친환경학교급식에 일주일에 500kg씩 전량 출하했다. 3년이 지나선 유기농 인증을 받았고, 한 기업의 녹즙 원재료로 납품했다. 하우스가 3동에서 8동으로 늘었고 다른 지역에 4,000평의 땅도 샀다.

호사다마였을까. 2012년, 미나리를 납품하러 가다가 큰 교통사고가 나고 말았다. 김씨는 다치지 않았지만 전 씨는 골반이 두 군데가 깨져 한 달 동안 걷지도 못하고 병원에 누워만 있었다. 이 사고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돈을 벌어야 인정을 받는구나싶어 이를 악물고 했죠. 욕심을 부렸던 거에요. 재미도 없고, 행복하지도 않고, 아이들을 돌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일만 했죠”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다보니 이들이 꿈꾸던 삶과 조금씩 멀어졌다는 전씨. 이들 부부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일을 줄이고 보람된 일을 하는 방향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엔 아파트처럼 들어선 하우스 8동을 싹 뜯어내고 10년 미나리 농사의 노하우를 접목한 농촌교육농장을 조성했다. 사람들에게 미나리의 효능을 알리고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김씨는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주변 분들이 미나리를 먹고 건강해질 수 있다면 미나리를 더 잘 만들고, 나보단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려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부부는 “귀농 이후 많은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자연 속에서 부부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극복해오다보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어려움에 처한 농업농촌의 현실 속에서 막걸리로 위안을 삼기보단 구조적인 문제 해결과 함께, 최선을 다한 나만의 농산물을 만드는 것도 농민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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