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심맹과 농맹, 도 긴 개 긴

  • 입력 2016.02.21 02:22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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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글자를 모르면 문맹, 색을 잘 구분하지 못 하면 색맹,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 하면 컴맹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요구나 바람, 절망, 꿈 등과 같은 일련의 감정상태를 모르는 것을 뭐라고 할까요? 심맹이라고 한답니다. 흔하게 쓰는 말이 아니니까 자주 듣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심맹, 낯선 단어이지만 이런 사람들은 많이 보셨지요? 도대체가 눈치가 없어서 주변사람들의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 또는 자기 욕심에 가려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도 못 읽은 척 하는 사람, 아예 다른 사람에게 관심 자체가 없는 사람 등 원인은 다르지만 행동하는 모양새는 비슷한 사람들을 흔하게 주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눈치도 있고, 그다지 욕심을 내는 사람도 아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는 사람인데도 유독 특별한 관계에서만 심맹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특별한 관계란 바로 가족관계, 또는 사랑하는 사이에서 그런 것이지요. 하다 보니 가족 중에서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 어떤 말에 마음의 상처를 받고 또는 고무받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가족 중에서도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몰라주는 경우가 주된 모양새입니다. 왜? 오랫동안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문화 속에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여필종부, 삼종지도랍시고 아내가 가장인 남편을 따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에서 꼼짝없이 살았으니, 더군다나 여성의 섬세한 감성이 남편의 마음을 읽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고,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읽기보다 따라주기를 바랐겠지요.

모름지기 한 사람이 사랑받을 때에 그 태도를 보면 됨됨이를 알 수 있다지요? 누군가에게서 사랑과 관심을 받을 때, 그 사랑이 자신의 능력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그치는 지독한 이기주의자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고, 자기가 받는 사람이 타인의 깊은 마음에 있는 것을 알아낸다면 그 사람은 이타적이고 속 깊은 사람이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가족들이 일어나지 않은 그 이른 새벽에 밥을 준비하며 가족들의 하루를 미리 준비하는 그 사랑, 계절이 오기전에 식구들의 입성을 미리미리 챙기고, 표 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일을 기꺼이 감당해 내며 가족들의 안녕을 바라며 삶이 온통 가족 사랑으로 채워진 여성의 삶은 ‘심맹(心盲’)이 아니라 ‘심지(心知)’ 그 자체입니다.

가정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살이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정 내에서 아내나 어머니의 역할을 세상에서 농민이 담당하는 것인 셈입니다. 삶의 가장 기초가 되는 먹거리를 생산하니까요. 한데 농산물 시장이 나간 집 대문처럼 열려져 있으니 가격폭락이 반복되고 있고, WTO 규정이다 뭐다 해서 보조금 지급도 웃기는 짬뽕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이 농사 저 농사를 짓다가 몸은 망가지고 희망은 삭아들어 농업의 존폐가 기로에 서 있는 지 오래되고 있습니다. 지금 반복되는 위기는 그 마지막 단계라고 보는 것이 무방하겠지요. 그런데도 봄이면 어김없이 씨앗을 심습니다. 돈이 안 된다는 것이 거의 확정적임에도 빈 땅을 못 놀리는 농민의 성정으로 해마다 봄이면 심고 또 심습니다. 세상은 농민들의 불안과 외로움과 절망을 알지도 못 하면서, 또는 알더라도 응당 그래왔던 것처럼 농민들의 농사를 당연시합니다. 그것도 농업정책을 잘 펼쳐서 그러리라는 착각까지 보태어서. 그치들에게 식자들처럼 이름을 하나 갖다 붙인다면 ‘농맹(農盲’)이라 해도 되겠지요?

여기에 여성농민의 삶을 말하자면? 가족과 세상을 사랑하는 그 깊은 속정을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입이 다물어 지지요. 하니 말을 아끼렵니다. 대신에 맹(盲)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지으니 약속의 맹(盟), 연대의 맹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 초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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