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구좌 당근 농가] 다품종 재배로 적자 보전 ‘이젠 한계’

중국산, 국내 최대 당근 주산지 명성 위협 … 자체수급 조절도 속수무책

  • 입력 2016.02.05 14:43
  • 수정 2016.02.05 15:03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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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서 여성농민들이 겨울당근을 수확하고 있다. 이영철씨는 “고향을 지키며 먹고 살 수 있도록 정부가 농산물값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승호 기자

국내 최대 당근 주산지인 제주시 구좌읍. 국내산 당근의 70%가 생산된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그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중국산 세척 당근의 거센 위협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지난 1일 월동 당근 수확이 한창인 제주 구좌읍 평대리에서 현장 농가의 시름을 확인했다.

돌담이 가지런히 둘러진 평대리의 한 당근밭에선 이른 오전부터 20여명의 사람들이 수확에 여념이 없다. 곳곳에 놓인 톤백이 당근으로 가득 차 있다. 우선 갑작스런 폭설에 대한 피해가 걱정됐다. 이영철(46)씨는 “제주는 땅이 얼지 않는데다 당근이 땅속에 묻혀있다 보니 피해가 크지 않았다”며 “오히려 날씨 때문에 당근가격이 반짝 상승했다”고 전했다.

이씨에 의하면 하루 이틀 전까진 모래당근 20kg 특품 기준으로 1박스에 2만원을 받았다. 작년 출하가보다 조금 오른 편이지만 수확량이 줄어든 것에 비하면 크게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당근농가가 겪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는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가격폭락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근농가에선 생산자연합회를 구성해 자체적으로 수급을 조절했고 게다가 비상품도 출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올해는 파종시기인 여름철에 폭우와 장마까지 겹쳐 수급조절이 저절로 이뤄졌다. 1,000평이면 20kg 기준 평균 800~850개가 나온다. 올해는 600개가 나왔으니 수확량의 20~30%가 준 것이다. 실제로 올해 제주의 당근 추정 재배면적은 1,532ha로 전년대비 9.6% 감소했고, 추정 생산량은 6만3,116톤으로 전년대비 7.3% 감소할 전망이다.

이씨는 “중국 세척당근이 들어오면서 기존 식당이나 김밥 식재료 회사 등이 많이 잠식을 당하다보니 생산량도 줄고 농사를 짓는 면적도 많이 줄었다”며 “이런 상황에선 가격이 올라야 하는데 움직이질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산 세척당근 등 수입산에 이미 시장을 잠식당한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수급을 조절해도 그만큼 또 수입산이 잠식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이젠 중국산보다 더 저렴하다는 베트남산 당근도 수입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구좌 당근 농가 대부분은 다작을 하고 있다. 한 품목만 하다 가격이 하락하면 피해를 볼 수 있어서다. 보통 2~3개의 품목을 기본으로 한다. 이씨는 당근 1만평과 무 8,000평, 감자 3,000~4,000평, 콩 7,000평을 하고 있다. 나머지 품목이 당근 농사를 위한 보험인 셈이다. 하지만 넘쳐나는 수입농산물 앞에선 다작도 속수무책이다. 한쪽에서 적자가 나면 다른 농산물로 때워왔지만 이제 한계에 임박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인건비 등 생산비가 천정부지로 올랐는데 농산물값은 20년전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며 “농민들은 큰 욕심이 없다. 고향을 지키면서 먹고살 만큼, 정부에서 그것만큼은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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