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농업] 전농과 농근맹

  • 입력 2016.02.05 09:13
  • 수정 2016.07.25 21:18
  • 기자명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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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지금은 상호간 직접교류가 정부에 의해 강제로 중단된 상태이지만 과거 민주정부 기간에는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 농민교류가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남측에서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산하에 농민본부가 결성되어 남북 농민교류에서 남측 대표기구 역할을 담당했고, 남측 농민본부의 파트너로서 남북 농민교류를 진행했던 북측 대표기구를 주도한 것이 조선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이었다. 그리고 지난 1월 31일 농근맹이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북측 농근맹이 창립된 것은 1946년 1월 31일이지만 그 직접적인 연원은 해방 직후 건설된 전국농민조합총연맹(全農)이라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농촌지역에서 항일독립운동과 반봉건 소작쟁의 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각 지역별 농민조합운동이었다. 1945년 8.15 해방 이후 전국적으로 지역단위 농민조합 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이를 바탕으로 1945년 12월 8일 남북을 아우르는 모든 지역의 대표 576명이 참석하여 전국단위 농민조합의 연합체로서 전국농민조합총연맹(全農)을 결성하였다. 전국농민조합총연맹(全農)은 당시 남북 13개 도에 도연맹, 군단위에 188개 지부, 면단위에 1,745개 지부를 두고, 조합원 약 330만 명으로 구성된 전국 최대 대중조직이자 자주적인 농민조직이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38선을 경계로 농민단체 활동과 관련하여 남북이 서로 상반된 정치조건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전농(全農)은 남북을 아우르는 단일한 방침과 활동을 벌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전농(全農) 본부는 서울에 두되, 북측 지역은 별도로 ‘전농(全農) 북조선연맹’을 두어 북측 지역의 중앙조직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1946년 1월 31일에 설립된 ‘전농(全農) 북조선연맹’이 바로 오늘날 농근맹의 출발이 되는 것이다.

그 이후 남측에서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극심한 탄압으로 자주적인 농민조직으로서 전농(全農)이 점차 와해되었고, 그 빈자리를 이승만이 주도한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1947년)에 이어 대한농민회(1951년) 등과 같은 어용관변단체가 채웠고,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이후에는 관제 농협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자주적인 농민조직의 명맥은 1972년 한국가톨릭농민회 창립으로 불씨가 살아났고,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결성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한편, 북측에서는 ‘전농(全農) 북조선연맹’이 토지개혁과 인민공화국 건설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대표적인 농민조직으로 발전해 갔다. 이 과정에서 1946년 5월 ‘북조선농민동맹’으로, 1951년 2월 ‘조선농민동맹’으로 개칭하면서 북측을 대표하는 별도의 농민조직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이후 토지개혁 및 농업협동화가 완료되면서 협동농장과 국영농장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구조로 재편됐고 1964년부터 현재와 같은 ‘조선농업근로자동맹’으로 확정되었다. 농근맹은 사회주의 대중적 정치조직으로 자신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으며, 동일한 성격의 조선직업총동맹(직총/노동자),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여성),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노청/총년) 등과 함께 각 부문을 대표하는 4대 대중조직으로 인정받고 있다.

농근맹의 회원은 협동농장의 농장원(농민), 국영농장의 농업근로자를 비롯하여 협동농장과 국영농장 및 농촌경리 분야에서 직접 일하는 국가기관·기업소(공장)의 노동자 및 사무원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농업생산에 참여하는 직접 생산자 이외에도 관련 기관의 노동자 및 사무원 등과 같은 농업관련부분의 모든 구성원을 회원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대상자 가운데 만 30세 이상, 60세 이하(여성은 55세 이하)의 구성원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있고, 현재 그 구성원 수가 약 130만 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근맹 조직은 최고 의결기구로 중앙위원회를 두고, 그 밑에 한편으로는 지역별로 도·시(군)·리 단위 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농업 관련 공장·기업·사업소 등 직장별로 위원회 및 초급단체를 두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 직후에 이르기까지 남북 모두 동일한 농민운동의 역사를 갖고 있고, 농민조직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단체제가 지속되고, 남북의 체제가 서로 다른 경로로 진행하면서 농민운동과 농민조직을 둘러싼 대내외적 조건이 서로 달랐고, 그 진행과정도 서로 다르게 흘러 왔다. 그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상호 협력을 통해 통일농업과 한반도 평화의 미래를 함께 만들기 위해서는 북측의 농민조직에 대해서도 조금이지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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