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퇴비 증산

  • 입력 2016.02.05 09:1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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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될까? 난 모르겠다. 그건 어디까지나 시인의 수사(修辭)이니 그 시(「알 수 없어요」)를 지은 한용운에게 물어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아는 것도 있다. 타고 남은 재가 분명 ‘거름’은 된다. 그러기에 『밥 한 사발은 남 줘도 재 한 삼태기는 남 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속담으로 전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궁이에서 퍼낸 재야말로 훌륭한 거름이었다. 재뿐이랴? 사람이나 가축의 분뇨를 비롯하여 볏짚이며 보릿대며… 썩힐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거름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공장에서 만들어진 화학제품이 ‘비료(肥料)’라는 한자말 간판을 달고 나오면서 ‘거름’이라는 우리 토박이말은 비료의 한 종류로 종속이 돼버렸다. 비료를 뿌린 뒤 너댓새 뒤에 들판에 나가보면, 비실거리던 작물이 생기를 차리고 몰라보게 쑥쑥 자라 있었으니, 그 모습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워낙 공급이 달렸기 때문에 그 귀한 공장제 거름은 구하기도 어렵고 값 또한 비쌌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금비(金肥)’였다. ‘돈을 줘야 살 수 있는 비료’를 일컫는 말이다. 화학거름이 ‘금비’라는 귀하신 이름으로 불릴 때, 식물을 썩혀 만든 종래의 거름은 두엄거름, 즉 퇴비(堆肥)로 호칭되었다. 금비를 구하기가 어렵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금비만 뿌려서는 토질의 산성화를 재촉하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퇴비를 갖추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농촌마을 사방 천지에 ‘식량증산’이라는 표어가 나붙었는데 그것과 늘 나란히 붙는 표어가 바로 ‘퇴비증산’이었다. 퇴비를 얼마나 부지런히 만들어내느냐에 한 해의 소출이 좌우되었던 것이다. 농림부에서는 군 단위, 면 단위, 마을 단위로 퇴비의 생산목표를 할당하고 성적이 우수한 마을에는 화학비료인 금비를 상품으로 주겠다고 했다.

마을마다 퇴비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비상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뒷산에서 마을 공터에 이르는 경사면의 공중으로 밧줄이 설치되었고 그 줄을 타고 산에서 베어 꾸린 풀 더미가, 케이블카처럼 쭈루루 미끄러져 날아왔다.

“저놈 한 번 타봤으면 좋겄다!”

우리는 공중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지만 엄두를 내기에는 너무 위험하였다. 섬마을인 우리 동네에서는 좀 특별난 퇴비생산 방안이 나왔다. 바닷말의 일종인 모자반을 제주에서는 ‘몸’이라 하고 우리 동네에서는 ‘몰’이라고 부르는데, 참몰이 있고 개몰이 있다. 참몰은 부드러워서 국도 끓여먹고 무쳐서도 먹지만 개몰은 뻣뻣해서 먹지 못 한다. 바로 그 개몰을 캐서 퇴비로 쓰기로 한 것이다. 썰물 때면 집집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몰을 캤다. 거칠게 다듬은 대나무 장대 두 개를 몰밭에다 쑤셔 넣고는 그 장대 둘을 배배 꼬아 돌린 다음 영차, 하고 잡아당기면 몰이 뭉텅이로 뽑혀 올라왔다. 그렇게 캔 몰을 바닷가에서 말린 다음에, 나중에 밭으로 져 올려서 한쪽에 쌓아두었다가, 짠물이 빠진 다음 밭고랑에 거름으로 내었던 것이다.

“낼 ‘퇴비증산’ 숙제 해오는 것 알제? 안 갖고 오기만 해봐라 기냥 콱…”

별명이 ‘산 도둑’인 담임 선생님이 종례시간에 그렇게 말했다. 내 여남은 살 인생(?)에서 그런 숙제를 해보긴 처음이었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저마다 새끼줄로 묶어 꾸린 풀 꾸러미를 들거나 혹은 메고서 등굣길에 나서야 했다.

아이들이 갖고 온 풀 꾸러미가 모여서 거대한 벼늘로 쌓였다. 학교 변소 옆에다 두엄더미를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소사 한 사람이 하기에는 벅찼으므로 수업시간마다 남학생 몇 명씩이 불려나갔다. 내 짝인 병수는 덩치가 컸는데 구구단을 틀렸다 하여 두엄 쌓는 일에 차출되었다. 병수는 한참 만에 교실로 돌아왔다. 변소에서 소마를 퍼서 뿌리는 작업을 하였다는데 하루 종일 온몸에서 똥오줌 냄새가 났다. 그 걸쭉한 분뇨냄새… 지금은 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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