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그 똑똑한 컴퓨터도 못 하는 농사

  • 입력 2016.02.05 09:10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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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오는 3월에 컴퓨터와 이세돌 프로 9단 바둑 기사가 바둑대전을 둔답니다. 상금이 무려 12억원이 된다는데 사람들은 상금보다 컴퓨터의 능력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이미 중국의 바둑 2단 판 후이 기사가 5전 전패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어쩌면 인공지능의 능력이 일취월장하여 그 복잡한 바둑게임정도는 손쉽게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겠지요. 이 사실을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호기심뿐만 아니라 도덕성 문제, 향후 바둑의 인기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나봅니다. 이미 20년 전에 체스(서양장기)게임에서 컴퓨터에게 진 이후로 프로 체스의 인기가 시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공감이 가는 신문기사 하나를 읽게 되었습니다.

컴퓨터는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어려워하고, 어려워하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가령 걸음을 걷는다거나 뛴다거나 하는 지극히 쉬운 일은 대단히 어려운 기술이고, 복잡한 수학계산을 하는 등의 작업은 엄청난 속도와 양을 자랑하는 바, 그리하여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그동안 사무직 노동으로 분류되던 고급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주 핵심적인 기능이나 경영분야 등 몇몇을 빼고는 대부분 컴퓨터가 일을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가 그렇습니다. 고속도로 통행료도 컴퓨터가 인식하고, 버스 승차권 발권도 기계가 하고,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도 기계가 다 하지 않습니까? 덕분에 통행료 징수하던 일자리도 줄어들고 매표소 창구직원도 현저히 줄고 민원담당 공무원 수도 줄었습니다. 이제껏 줄어든 일자리는 비교적 단순한 노동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측을 하며 일자리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컴퓨터가 어려워하는 육체노동을 멀리하자는 얘기가 아니라고, 오히려 컴퓨터도 못 하는 육체노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노동대가와 처우를 제대로 한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냐는 건강한 관점을 놓지 않았습니다.

옳지, 옳아! 이런 걱정 정도는 누군가가 해야 하는 중요한 관점인데 그렇다면 농업은? 농업이야말로 컴퓨터가 접근하기 가장 어려운 분야가 아니던가요? 물론 기계화가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기계가 하는 일은 농사의 아주 일부분이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게다가 새로 개발되는 농기계들은 점점 비싸지고 정교한 작업을 하는 기계일수록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아 정부의 보조를 받는 일부 농민이나 접근할 뿐, 보통의 농민들은 그림의 떡이니까요. 더군다나 기계를 조작하는 사람의 능력이야말로 핵심기술이므로 농업이야말로 최후까지 살아남을 직업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 아닌가요?

남는 문제는 딱 하나입니다. 농업이야말로 컴퓨터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근원적인 직업으로서 이만큼 근사하고 훌륭한 직업은 없다고, 컴퓨터가 못 하는 일인 만큼 노동의 대가는 훌쩍 올라야 하고, 그 어려운 육체노동을 하느라 고달픈 몸이 쉬도록 주 5일제를 보장하고, 농민 전용 리조트 회원권을 분양하여 심신을 이완시키고, 농민 전용 대학병원 설립으로 농민들의 근골격질환을 치료하고, 농업인 육성 교육기관을 국책기관으로 지정하고, 특히 농업에 종사하는 여성농민에게 생리휴가는 물론이고 모성보호 정책과 교육 사회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바우처 사업을 실시하고, 여성농민을 중요한 농업인력으로 인정하며 각종 혜택과 지원을 아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정도는 돼야 컴퓨터도 못 하는 일을 하는 농민들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인정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농업을 둘러싼 환경을 보자면야 희망의 근거가 어디에도 없지만, 이렇게라도 않는다면 농업과 농민은 더욱 천덕꾸러기가 될 터이니 우리마저 그리 여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상상으로나마 접근해봅니다. 그나저나 이세돌 9단을 응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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