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최종회

  • 입력 2016.01.30 17:52
  • 수정 2016.01.30 17:57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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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오랜만에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난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전날 뉴스는 온통 당진의 삽교천 준공식이 화제였다. 바다를 막아 무려 오천 정보의 논이 새로 생겼다는 소식에 선택도 적잖이 흥분했었다. 그런 공사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 대통령 한 사람뿐일 거라고, 과연 하면 된다는 새마을 정신은 위대하다고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청천벽력처럼 들이닥친 소식이란! 

“형님, 일어나셨어요? 얼른 텔레비전 켜 봐유.” 

새벽에 꾼 꿈으로 잠이 달아나 뒤척이고 있을 때 요란스레 전화가 울렸다. 아직 날도 새지 않은 시간에 전화가 오는 일은 드문 일이었기에 약간 불안한 마음이 스쳐갔던 것 같다. 전화를 건 사람은 읍내에 사는 당 사무국장이었다. 성격이 살가워 몇 차례 술자리 끝에 형님동생 하는 사이였다. 

“왜 그랴? 새벽 댓바람부터 뭔 일 났는가?” 

그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선택은 느긋하게 되물었다. 

“대통령이 돌아가셨대유. 글씨, 정보부장이 총을 쐈다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하여간 전화 끊으니까 텔레비전을 보셔유.” 

▲ 일러스트 박홍규

듣긴 들었으되 무슨 소린지 모를 소리였다. 즉시 텔레비전을 틀자 아나운서의 떨리는 목소리와 화면 가득 ‘박정희 대통령 각하 서거’와 비상 계엄령 선포라는 자막이 연이어 지나갔다. 서거라는 말은 거의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지만 그것이 곧 죽음을 뜻한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선택은 저도 모르게 ‘악!’ 하고 고함을 질렀다. 이미 잠이 깬 아내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화면을 응시하며 연신 ‘아이고’ 소리를 내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나 모든 것이 확실했다. 전날 밤, 중앙정보부에서 가진 만찬장에서 경호실장 차지철과 정보부장 김재규가 다툼을 벌였고 그 와중에 김재규가 두 발의 총을 대통령에게 쏘아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사망했다는 거였다. 선택은 옷을 꿰어 입고 밖으로 나왔다. 날은 이미 밝고 있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 더 이상의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무작정 차에 시동을 걸고 면소재지로 향했다. 농협 마당에 차를 대고 나오는 순간, 멀리 서 있는 오종대가 보였다. 

일제시대에 세운 오종대는 수동식 사이렌이었다. 낮게 울기 시작했다가 높은 소리로 길게 울려 퍼지던 사이렌 소리는 불과 몇 년 전까지, 그러니까 마을들에 앰프가 설치되기 전까지 드문드문 써먹고 있었다. 예비군 중대에서 관리하는 오종대는 철거를 하기로 결정이 난 뒤에도 차일피일 아직 그대로 서 있었다. 선택은 마치 지금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라는 듯 달음박질로 오종대로 다가갔다. 한 번도 올라가 본 적 없는 오종대는 까마득하게 높았다. 무섬증이 있어서 나무타기도 젬병인 선택이 마치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오종대를 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꼭대기에 오르자 그제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마치 경운기 시동을 걸 때처럼 손잡이를 잡고 힘을 주어 오포를 돌리기 시작했다. 

사방에 걸린 네 개의 스피커에서 길게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선택은 그것만이 지금 해야 할 일이라는 듯 더욱 힘을 가해 손잡이를 돌렸다. 들을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하던 오종소리가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얼마나 오래 돌렸을까. 기운이 다 빠진 선택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 아래 십여 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 위를 향해 손을 뻗으며 무어라고 지껄였지만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마 얼른 내려오라는 손짓 같았지만 선택은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도무지 일어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려가긴 내려가야 할 텐데.’ 

하지만 여기서 내려가면 어쩐지 아득한 추락이 될 것만 같았다. 다리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기어이 눈물 한 방울을 떨구는 순간, 산에서 막 고개를 내민 해가 반짝, 섬광과도 같이 사방에 햇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최용탁 장편소설 <들녁>을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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