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을 먹던 날
보신탕을 먹던 날
  • 이중기
  • 승인 2008.03.0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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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기의 농사이야기 - 24

“참 먹으러 가자.”

사다리 위에서 열심히 가위질을 하고 있는데 자동차 경적에 이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포도밭 건너 길가에 친구 용석이가 화물차에 앉아 있다.

나는 사다리에서 내렸다가 미친년 산발하듯 도장지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복숭아나무가 몇 천 평이 빨리 이발을 해주지 않는다고 난린데 ‘녹전 카페’로 갔다간 오늘 하루를 통째로 까먹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사다리 위로 올라갔다.

“갈 시간 없다. 막걸리 가지고 온나.”

친구는 몇 번이나 재촉을 해도 더 이상 대답이 없자 그만 차를 몰아 가버렸다. 오늘 이대로만 일을 하면 해 전에 집 위의 밭은 마칠 수가 있을 것 같다. 조금 있다가 또 다시 경적소리가 들린다.

“어데서 한잔 하노?”

친구는 술을 사 가지고 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마당으로 오라고 대답을 하고는 가위질을 서둘렀다. 그런데 가위가 제대로 벌어지지 않아 들여다보니 아이고! 가위 용수철이 똑 끊어지고 만 것이었다. 낭패였다.

운전면허증이 없는 나는 당연히 차가 없고 가위 사러 갈려면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왕복 차비가 만이 천 원이나 들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용석이는 막걸리 두 병에 새우깡 한 봉지를 들고 왔다. 막걸리는 작년 9월에 사이다 태워 마셔보고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보현산 막걸리 맛이 너무 달아 얼굴이 찡그려진다. 그 사이에 술맛이 달라졌는지 내 입맛이 달라졌는지 분간이 안 되어 친구에게 물어보니 옛날 맛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종이컵으로 연거푸 두 잔을 비우고 나니 취기가 얼굴로 확 몰린다.

“겨울 내내 놀다가 일 하니까 팔이 아파 못 하겠다. 니는 괜찮나?”

친구는 오른팔을 빙빙 돌리며 맑게 웃는다. 날이 하도 따뜻해서 오늘부터 포도 전정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시내 아파트에서 포도밭으로 출근을 하는데 아내는 공장에 일하러 다니고 부모님이 계시는 마을 집에는 소가 오십 마리 이상이나 된다. 또 포도 철에는 가근방의 포도를 모아 울산 공판장으로 싣고 가서 팔아다 주면서 운임으로 버는 수입이 꽤 솔솔하다.

그런데도 그는 늘 앓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면 나는 그때마다 소 한 마리 몰아내면 돈이 몇 백인데 무슨 걱정이냐고 퉁바리를 놓는다. 나는 그가 부러운데 그는 나를 부러워한다.

남의 밥의 콩이 더 굵어 보이기는 세상 어디나 같은가 보다.

“탕 먹으러 갈래?”

친구는 막걸리 몇 잔으로 점심을 때우려는 작정인 모양이라 은근히 물어보았다. 아내는 집에 있었지만 어제 안동으로 큰놈을 태워다 주고 와서는 그 놈이 어떻게 밥이나 제대로 해먹을 수 있느냐는 것부터 시작해서 쓸데없는 걱정으로 밤새도록 잠을 설치더니, 아직도 한밤중이라 친구에게 밥 한 그릇 내놓을 수 없는 형편이기도 했지만 속셈은 가위를 사러 가는 것이었다.

“탕? 좋지. 그 대신 소주는 안 된다. 알았나?”

그가 먼저 못을 쾅 박는다. 내가 익히 썼던 수법을 아는 그의 다짐에 나는 웃고 만다.

나는 시장에 가서 가위 두 개와 톱 세 자루를 샀다. 다가오는 주말에 시내 사람들이 몇 도와주러 오겠다는 약속이 있었다.

가위 들고 복숭아나무 밑에 서 본 일이 없는 사람이라도 주야장천 하늘만 찌르고 있는 도장지를 자르는 일은 할 수 있다고 몇 번이나 사정해서야 얻어낸 약속이었다. 그것만 잘라주어도 일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었다.

“우야꼬, 벌써 복상 땄는기요? 요새는 암캐 안 잡니데.”

보신탕집 주인 여자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반긴다. 나는 안주로 수육을 시킬 때마다 ‘개 불알’ 한 접시 달라고 하고는 계산할 때는 암캐 잡은 셈 치라고 했더니 주인 여자는 그 말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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