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농민 공동체, 희망의 증거 ②

  • 입력 2016.01.10 01:56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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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언젠가 여성농민단체의 수련회에 가서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분위기상 세계전쟁이 끝난 유럽의 어느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외국영화였지요. 제목이 <안토니아스 라인>이니 우리말로 하자면 안토니아 일가 정도? 젊은 여성 안토니아가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고향마을에 딸을 데리고 와서는 살림을 일구는 과정을 영화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 청각장애가 있어 소외받는 마을사람을 농장에서 일하게 하고 결혼도 시켜주었고, 남자형제와 가족들에게 폭행당하는 여자아이를 돌봐주는가 하면,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지루하다고 평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나는 한 장면 한 장면을 집중해서 보았습니다. 본시 아슬아슬하거나 공포감을 주는 영화보다는 잔잔하게 삶의 고뇌를 담은 내용을 좋아하는지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재미를 붙여 몰입을 한 셈입니다.

감명깊게 본 영화를 몇 줄로 줄여서 말하자니 시시하기 그지없지만 영화가 던져주던 메시지는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주위에 안토니아 같은 언니들이 많이 있지요. 품이 넓고 일을 야무지게 잘 하며, 멀리 바라보면서도 섬세하게 일하는 자세를 가진 우리들의 이모나 언니들이 있어 온갖 어려움에도 가정과 사회가 제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고는 합니다.

바닷가 공동체 회원들의 한 언니 남편분이 여러 장애를 가지고 있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대신 야무진 언니가 농사일이며 여러 일을 억척같이 해내어서는 살림을 꾸려가며 두 아이를 키웠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고생이 끝이라고들 합니다. 언니를 닮은 딸이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었으니 언니의 헌신과 강한 생활력은 그렇게 보상이 되는 셈이라고 자타가 인정합니다. 허나 지금까지의 그 고생을 어찌 말로 다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항시 밝은 얼굴로 사람을 맞으며 상대방에게 힘을 주고 있으니 사람들은 그 언니랑 같이 있으려 하고 그 언니랑 짝이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언니의 남편분은 술과 담배를 하지만, 돈을 벌지는 않습니다. 돈을 벌지 않은 지 몇 십 년이 되었다지요. 게다가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합니다. 듣자하니 예전에 뱃일을 할 때 사람들이 던진 말과 감정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들 합니다. 그런 아저씨께서 어느 날 평소답지 않게 작업장으로 와서는 언니에게 담배값을 달라고 했습니다. 전에 없던 일이라 놀라면서도 일을 하시라고, 누구나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며 먹히지도 않을 말을 새삼스레 강조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함께 일하던 언니들도 일하러 오시라고, 남자손이 많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설마 일하러 오겠냐고, 일을 손 놓은 지가 얼마냐며 다들 한 마디씩 보태었는데, 그 몇 일 뒤, 진짜 일하러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잘 왔다고, 하던 일이라 잘 할 것이라며 추켜세웠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술과 간식을 권하며 수고했다고 칭찬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굴을 채취하는 날이면 참석을 하시는 것입니다. 놀랄 일이지요? 단순하게 보면 아저씨의 변화인데, 그 변화의 중심에 뭐가 있었던 것일까요?

바닷가 공동체의 힘이겠지요. 힘센 자 중심의 수직적인 권력체계가 아니라 수평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돕는 방식,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방식, 지적보다는 칭찬과 격려로 배려하는 방식이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겠지요. 여성들이기에 가능한 방식인 셈이지요. 그러니 안토니아 같은 언니들을 세상의 중심에 서도록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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