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51회

  • 입력 2016.01.09 21:32
  • 수정 2016.01.09 21:38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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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임마. 이 정권이 농민을 위한다고? 너야말로 정신 차려라. 그깟 조합장 자리도 권력이라고. 박정희가 늬 애비나 되냐?” 

지랄 같은 성격의 석종도 누가 들을까 무서운 소리를 내뱉곤 했다. 아무래도 큰일이 나지 싶었는데 석종은 그 해에 가까운 원주에서 경찰에 잡혀 유치장 신세까지 졌다. 가톨릭 농민회에서 하는 집회에 참가했다가 그리됐다고 했다. 하여튼 석종을 따르는 몇몇이 농협에 와서 시비를 거는 정도 외에는 별 탈이 없이 잘 굴러가는 농협이었다. 

모내기가 다 끝나고 농촌에도 별 다른 일이 없어 개울로 천렵을 다니던 7월 초순이었다. 그 동안 뜸했던 정해수가 갑자기 선택을 찾아왔다. 

▲ 일러스트 박홍규

“아이고, 우리 아재가 조합장이 되었다면서? 그러면 나한테 연락을 해야지, 섭섭하게.” 

예순 줄에 접어든 그는 아직 팽팽하게 젊었다. 고급 차인 슈퍼살롱에 기사까지 대동한 그는 갈비 한 짝을 마루에 내려놓았다. 

“제가 찾아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만날 일이 없어서 그랬지, 읍내에서 반공궐기대회 같은 것을 할 때면 으레 나타나 인사를 나누곤 했다. 그는 언제 그렇게 언변이 늘었는지 궐기대회에서 늘 연설을 하곤 했다. 

“조합 일이 바쁠 텐데 내가 인사를 와야지. 그건 그렇고 박의원 소식은 들었지?” 

모를 소리였다. 

“이번에 선거 끝나면 장관으로 간다고 하드만. 지구당 부위원장이라면서 몰랐는가?” 

“요즘 당사에 통 나가보질 못해서 몰랐네요. 장관으로 간다는 소문은 전부터 있었는데, 또 선거는 벌써 끝났잖습니까?” 

“하, 이 사람. 대통령 선거 말일세. 내일 모레가 9대 대통령 선거 아닌가.” 

대통령 선거는 잠시 잊고 있었다. 사실 선거라고도 할 수 없는 거여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고 보니 정해수는 지역의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이었다. 

“이번에 선거하러 올라가시겠구만요?” 

“그럼. 가야지. 한 표라도 잘못되면 안 되니까. 대통령께서 선거가 끝나는 대로 개각을 하면서 박의원을 불러올리려는 모양일세. 그래서 말인데 이제 내가 대의원 자리를 내놓고 국회로 들어가서 일을 해볼 생각이네. 자네가 좀 도와주어야겠어.” 

허황된 꿈이나마 잠시 박의원의 뒤를 생각했던 자신이 정해수 앞에서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정해수 같은 자가 노린다면 자신은 어림도 없을 것이었다.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 글고 대의원님이 나서면 쉽게 되지 않겄습니까?” 

“그렇지가 않아. 박의원 뒤를 노리는 자들이 여럿 있단 말이지. 그래서 지역에서 서명을 대대적으로 받아서 당에 제출할 생각이야. 우리 지역에서는 이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삼고 싶다는 그런 내용으로 서명을 받아서 올리면 그게 상당히 영향이 있다고 하네. 중앙 요로에 힘을 쓰는 것은 내가 따로 할 테지만.” 

“그럼 제가 우리 면에서 서명을 좀 받아 달라 이 말씀이시구만요.” 

“그렇지. 그러면 내가 자네를 수석부위원장으로 올려줌세.” 

도대체 수석은 또 몇 명이나 될지 모를 일이지만 정해수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피곤한 일이지만 힘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에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고 박정희는 2,578명의 대의원 중에서 2,577표를 얻어서 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한 표는 무효표였다. 

“어느 놈이 대통령 이름도 제대로 못 써서 무효표를 만들어, 참. 아깝네. 그 놈만 아니어도 만장일친데 말여. 그나저나 대통령 말씀이 내년에는 농가소득을 이백만 원까지 올린다고 하니 이제 시골도 잘 살게 되었네, 그려.” 

선거를 하고 내려온 정해수가 입맛을 다시며 그렇게 말했고 선택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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