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농약사’를 시작하며

최재관 전농 전 정책위원장

  • 입력 2008.03.01 19:59
  • 기자명 최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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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농업의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다. 비료값, 사료값, 기름값은 폭등하고 한미 FTA의 영향으로 농축산물 가격은 반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경쟁을 더욱 가속화하겠지만, 농민들이 사는 길은 경쟁이 아니라 단결에 있다. 농업협동조합으로 단결하여 농산물값도 제값을 받고, 농협에서 비료값도 올리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농협간의 쌀값 경쟁에 농민이 죽고 외국 농산물과의 경쟁에 우리 농민들이 죽고 있다.

농민회원들의 단결과 협동

경기도 여주군농민회는 농민들이 사는 길은 단결과 협동을 실현하는 길에 있다고 믿고, 크게는 농업협동조합을 개선하여 농민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고 작게는 농민회원들도 단결과 협동을 실현하기 위한 그 작은 출발로 농민회의 농약사를 열게 되었다.

농민회가 그동안 데모할 때만 농민들을 찾아보는 것을 조금이라도 고쳐보자는 것이 농약사 출발의 동기였다. 조합원을 모으고 출자를 모아서 영농조합법인을 세우고 지난 1월31일 농약사의 문을 열었다. 그동안 농약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 다른 지역의 농민회원들은 여주에서 농약사를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우려와 걱정을 해주었다. 전국의 많은 농민회가 농약사를 열었지만 성공한 사례보다 실패한 사례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한 박스에 백만원하는 농약이 있으니 자그마한 가게의 구색을 맞추기도 만만치 않다. 고추 종자는 비닐봉지 하나 부피에도 백만원이 넘는다. 돈이 많을수록 싼값에 농약을 구하고 자본이 작고 규모가 작은 농민회의 농약사가 생존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여건이다. 농약사에서 농민들에게 많이 팔더라도 농산물값이 폭락하면 농약값을 받지 못하면서 외상과 재고로 어려움을 겪기 십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농약가게에서는 농약을 잘 파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외상값을 잘 받는 것이 사업의 진정한 성공 열쇠라고 한다.

사람들은 쉽게 말하기를 “농약가게를 했던 사람들 치고 빌딩을 안 가진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그것도 옛날 말이다. 농약과 비료에 대한 보조사업이 농협으로 집중되면서 과거 시판상과 농협 판매의 비중이 7대 3에서 4.5대 5.5로 역전되면서 시판상들은 농협에게 빼앗긴 좁아진 시장에 치열한 경쟁으로 생존 여건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여주농민회도 농민 조합원들이 낸 출자금을 날리는 날이면 농민회도 큰 타격을 면할 수 없다. 농약사업이 혹여 망하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깊은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결정한 새로운 시도에 최선을 다할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동안 여주군농민회가 걸어온 길이 시련과 고난의 길이었고 농약사보다 훨씬 험난한 길을 걸어온 우리들이기에 간단하지는 않지만 잘 해낼 수 있으리란 자신감도 가져본다. 우리는 자본이 적고 경험이 부족하지만 남들에게 없는 농민 회원들이 고객으로 있고, 사실 우리 회원들이 모두다 우리 농약사를 이용한다면 망할 일도 없다. 결국 농민 농약사의 승패는 우리 농민회원들이 단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작게는 몇십만원에서 크게는 천만원에 이르기까지 망할 각오를 하고 농민회를 믿고 출자를 해준 회원들이 있고, 고추 박사, 배추 박사, 과수 박사 등 수많은 농사 박사들이 우리 회원으로 있다. 그 박사들은 회원들의 정보와 지식을 서로간의 경쟁을 위해 숨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살기 위해 공유하는 조직이 우리 농민회다. 또한 고추육묘장, 벼 육묘장, 각종 채소의 육묘장을 보유하고 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최근에는 상토나 퇴비 등에 대한 지자체의 지원이 확대되면서 농민회나 농민단체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고 지역농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농민회의 정치적인 힘 또한 농약사의 큰 도움으로 되고 있다.

농민운동의 새 가능성 제시

사람이 힘이고 사람이 희망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농민회원들이 농민 농약사의 힘이고 희망이기도 하다. 여주군농민회의 경제적인 단결과 협동에 대한 작은 실험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전체 농민이 농협의 주인으로 나서는 그 날을 꿈꾸며 우리 농민회부터 경제 협동의 모범을 만들어 보자는 각오로 뛰고 있다. 농민회원을 믿고 농민회원들이 단결하는 길에 승리의 비결이 있고 농민회 나가는 길에 승리뿐이다 라는 확신을 가지고 농약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해가 뜨는 시간이 출근 시간이고 해가 지는 시간이 퇴근 시간인 고달픈 농약사 생활에도 농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자는 농민회 정신과 단결과 협동을 통한 사람사업 조직사업의 성과를 내고자 하는 의지로 농민운동의 새로운 면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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