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50회

  • 입력 2016.01.03 21:17
  • 수정 2016.01.03 21:22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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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에 선택은 만 원짜리로 백 장을 넣어 지구당 사무장에게 건넸다. 박의원과의 술자리를 파하고 돌아올 때 사무장이 다가와 넌지시 한 마디 했던 것이다. 

“우리 의원님이 워낙 청렴하셔서 선거 돌아올 때마다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닙니다. 이번에 부위원장님이 조금 성의 표시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당연히 나중에 돌려드립지요.”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다. 

“그럼 얼마나?” 

“정해진 거야 있겠습니까? 부위원장님들은 보통 한 장씩 하십니다만.”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 돌아오면서 그 정도면 썩 손해 보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백만 원이면 농촌에서 큰돈이긴 해도 공화당 부위원장 자리 또한 여간한 자리가 아니지 않은가. 나중에 돌려준다는 말 또한 그만한 이권을 주겠다는 것일 테니 일종의 투자라고 봐야 할 것이었다. 

다방에서 만난 사무장은 먼저 조그만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박스 안에는 금박을 두른 명함이 가득 들어 있었다. ‘대한민국 민주공화당 ㅇㅇ지구당 농촌사회분과 부위원장’이라는 직함에 큼지막하게 제 이름자가 찍혀 있었다. 명함을 보는 순간, 선택은 주머니에 넣어온 돈뭉치가 조금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갑자기 국회의원이라는 직함이 어른거렸다. 언감생심 꿈도 꾸어보지 않은 것이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하긴 위원장이 유고시에는 부위원장이 대행을 하게 되어 있고 그렇다면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아주 먼 것만도 아니었다.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부위원장은 무려 열 명이나 되었다. 무슨 분과가 그렇게 많은지 분과마다 부위원장이 있었다. 

▲ 일러스트 박홍규

하여튼 그 해 선거에서 박종렬이 무난히 당선되었는데 곧바로 장관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소문과 달리 서울로 올라가더니 몇 달이 지나도록 지역에는 발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 말에 선택은 또 한 번 돈 봉투를 마련해야 했다. 이번에도 역시 박의원의 사무장이 찾아온 것이었는데 임기가 찬 산동면 조합장에 선택을 앉히기로 했다는 명목이었다. 당시만 해도 면 단위 조합장 정도는 지역의 국회의원 입김이면 무사통과였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나누어 준 명함의 효과는 예상보다 큰 것이었다. 산동면에서 선택은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권력자가 되어 있었다. 어디에 어떻게 손을 썼는지 선택은 산동면 조합장에 단독으로 천거되었고 형식적으로 대의원회에서 박수로 통과되었다. 바야흐로 선택 일생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조합장이 된 선택을 괴롭히는 일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진즉부터 삐딱하던 치들 몇몇이 ‘가톨릭농민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농협 일에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나섰던 것이다. 게다가 산동면에서 그 일을 주동하는 자는 다름 아닌 선택의 초등학교 동창생인 이석종이었다. 

“농협에서 비료를 팔면서 비료 값에 강제로 출자금을 붙이는 이유가 뭐냐? 그게 어느 법에 따라서 하는 거냐?” 

이런 식으로 와서 따지면 조합 직원들이 진땀을 뺐다. 그럴 때면 선택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럼, 농민들한테 따로 출자금을 납입하라고 하면 순순히 할 것이냐? 글고 출자금이 어디로 가는 돈이냐? 농협이 잘 돼서 이익이 남으면 다 조합원한테 가는 거지.” 

대충 그렇게 알아듣기 좋게 말하면 물러설 만도 한데 어디서 듣고 배웠는지 농협법이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따지고 들면 선택의 대답이 궁해지곤 했다. 

“내가 모를 줄 아냐? 그 농민횐가 뭔가 하는 데 댕기면서 얻어 들은 풍월로 그러는데 큰일 날 짓 하덜 말어. 농사짓는 사람이 정부가 하는 말을 믿어야지, 그깟 불순분자 몇이 모여서 찧고 까부는 델 다녀서 어쩌겠다는 거냐?” 

결국은 그렇게 말이 번지게 되어 있었다. 선택이 보기에는 정말 한심한 짓거리였다. 정부에서 농민을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르는 그들이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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