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농민 공동체, 희망의 증거

  • 입력 2016.01.03 10:32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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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올해도 어김없이 바다 일을 합니다. 겨울철에 일거리가 많지 않은 틈을 타 굴을 줍고 까서 직거래로 판매하는 것이지요. 여덟 가구의 여성농민이 주가 되어 조합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바다는 오로지 풍광용이라 여기던 나는 산골사람인지라 행여나 바다에서 그 무슨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안 해봤습니다. 그런데도 바다를 끼고 사는 곳이다 보니 어쩌다가 그렇게 엮여서 바다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 공동체에 결합하기 전부터 이미 몇 몇 언니들을 중심으로 몇 년째 해오던 일인지라 공짜버스 타듯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조금과 사리의 물때도 모를뿐더러 굴도 깔 줄 모르던 완전 초보가 한 3년을 같이 하다 보니 언니들의 도움 덕분에 이제 제법 남들 흉내를 낼 수 있습니다.

농어촌 대부분의 일들은 남녀가 힘을 합쳐야 가능합니다. 특히 바다 일이라는 것이 워낙 거칠고 더욱이 굴 줍기는 많은 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남성들의 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렇게 남녀가 공동으로 사업에 참여하면서도 여성들이 주도권을 갖는 것은 지극히 드문 경우이지요. 기백만원씩 공동으로 출자하여 바다 운영권을 사는 것부터 시작해서 장장 4개월 가까이를 굴 사업장 운영에 여성농민이 주가 됩니다.

올해로 10년 째 맞이하는 이 공동체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공동의 출자금은 물론이거니와 생산 전 과정을 공동으로 진행하며 공동분배를 합니다. 과정에서 잡음이 생겨날 경우는 회의를 통해 민주적으로 결정을 하고 공동작업 외에 개별이 해야 할 일은 당번제로 운영하고 당번은 가벼운 수당을 받습니다. 출자자 이외에 작업에 참여할 경우에는 다른 곳보다 높게 임금을 책정합니다. 가급적이면 출자자 이외의 분들에게도 이익을 돌려드리고자 함입니다. 운영과 총무 일을 도맡아 보는 이가 여성농민이며 여성들이 주가 되어 운영하고 남편들이 돕는 형태입니다.

김장철이나 설 즈음처럼 주문이 많을 때는 날이 새기 전부터 작업장에 나와서 밤까지 작업을 하는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 힘겨움을 가시게 하는 것은 단연 수다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모이면 내 아픈 이야기보다 남 이야기하기가 쉽습니다. 지지적인 분위기가 아니고 경쟁적인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곳에서도 남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때때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 했던 자신의 얘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고생했다고 위로의 말들을 아끼지 않습니다. 상담소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니지요. 때로는 노래 잘하는 정숙언니가 힘찬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줍니다. 작업장이 노래방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올해는 날이 따뜻해서 일하기가 수월한 편입니다. 가끔 일이 힘들고 지쳤을 때 일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면 갈등이 불거지기도 합니다. 누가 잘 했고 누가 못 했다고 언성이 높아지지만 역시나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야하는 상황의 연속이므로 결국은 서로를 보듬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살이가 그런 것처럼 말이지요.

여럿이 같이 일하는 것이 어렵다 해도 한 번 잘 하기는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힘든 일을 그 누구의 지원 없이 공동체 방식으로 10년 이상 운영을 해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가운데는 몸 아끼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자신의 이익만큼 상대의 이익을 보장하고자 노력하는, 잘 나고 못남이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므로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새해에는 이런 사례가 많이 발굴되어서 농업의 위기를 헤쳐 나가는 희망의 증거가 여성농민임을 밝혀갔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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