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2015년, 전국의 농민은 식량주권을 사수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땀까지 모두 쏟아 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지난 1월 대의원대회에서 쌀 관세율 조정, TPP 가입 추진, 중국·뉴질랜드·베트남과의 FTA 등이 겹쳐 식량주권과 한국농업의 위기가 고조될 것으로 내다보고 쌀 전면개방 저지 등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에 맞선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당시 김영호 전농 의장은 “수십 년 간의 개방농정으로 농민은 고사 직전”이라며 “민주주의 위기, 주권위기, 농업위기를 단결된 농민투쟁으로 극복해가자”고 호소했다.
농민의 피맺힌 절규, 서울 한복판 점령
농민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아니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지난 5월 정부는 밥쌀용 쌀 1만톤 수입을 발표했고 김 의장 등 농민들은 전남 나주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앞에서 항의하다 사지가 들려 끌려가기도 했다. 정부의 밥쌀용 쌀 수입과 농민들의 투쟁 소식이 알려지며 농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11월 민중총궐기의 도화선이 된 셈이다.
전국의 농민 1,000여명은 지난 7월 서울역 광장에서 ‘밥쌀용 쌀 수입저지와 박근혜 정부 새누리당 규탄 전국농민대회’를 열고 확산된 분노를 모아 대정부 투쟁을 선포했다. 전농 각 지역에선 도연맹별 전진대회에 이어 수확기에 접어든 9월 전국 동시다발 농민대회를 통해 10만 농민대회 조직에 나섰다. 김 의장 또한 전국순회에 나섰다.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가 된 박 정부의 개방농정은 결국 쌀값 대폭락으로 이어졌다. 성난 농심은 자식처럼 돌봐온 논을 뒤엎거나 정부 청사 앞에 나락을 쏟아 붓고 흩뿌리는 것으로 표출됐다. 농민들은 “쌀 수입 중단과 남북 농업교류로 40만톤 북녁쌀보내기, 공공비축미 100만톤’ 등을 통해 쌀값 폭락을 막을 수 있다”고 했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지난 10월 중순을 기준으로 산지 쌀값은 80kg 기준 15만6,880원으로 평년보다 7.2%가 떨어졌고, 지난해보단 7.5%나 떨어졌다. 쌀값 폭락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10월 26일 20만톤 시장 격리를 골자로 하는 대책을 뒤늦게 발표했다. 농민들은 “생색내기에 불과한 허울 뿐인 대책”이라며 전국 24개 시군에서 나락을 적재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이어 지난 달 14일, “못살겠다 갈아엎자”는 피맺힌 절규가 서울 한복판을 점령했다. 농민들은 끝이 안 보이는 행렬로 상여를 앞세우고 청와대를 향했다. 농민도 이 나라의 국민임을 선언한 것이다.
“총선에서 농민의 뜻 실현하고 정권교체로”
박형대 전농 정책위원장은 “2015년은 농민이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한 한해였다”라며 “박근혜 정권에 정면으로 맞서 식량주권을 지키고 역사와 민중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헌신했다”고 평가했다. 박 정책위원장은 무엇보다 “농민들 내에 있었던 무기력함과 패배주의가 한 해 동안 이어진 투쟁과 11월 전국농민대회를 통해 한번 해보자라는 자신감으로 자리잡았다”며 “농업·농민·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하나의 단결된 힘으로 나타나서 해내야 한다는 자신감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박 정책위원장은 이어 “이런 자신감에 기반해 2016년에도 식량주권 사수 투쟁을 끈질기게 벌여내면서 총선에서 농민의 뜻을 실현하고 정권교체로 이어갈 수 있도록 농민의 힘을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도 남아있다. 경찰의 살인적 진압에 쓰러진 농민 백남기씨의 상황이다. 지난달 14일 이후 50여일이 된 시점에서도 경찰이나 정부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젊었을 적엔 군사독재에 항거하고 이후엔 오롯이 농업과 환경을 지켜온 농민운동가로서의 그의 삶은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두드렸고 여전히 많은 이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박 정책위원장은 “상록수 같은 분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변치 않고 간직한 채 어려운 농촌에서도 꿋꿋하게 지켜온 자체가 우리사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설명하며 “농민들도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