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사설] 2015 농민들

  • 입력 2015.12.26 13:18
  • 수정 2015.12.27 21:13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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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쌀이 전면 개방됐다.

쌀은 1995년 최소시장접근(MMA)방식으로 제한적으로 수입됐다. 이때부터 우리 농업은 개방의 파고 속에서 한쪽에서는 이농의 보따리를 꾸리고, 한쪽에서는 규모화 기계화 시설화 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경쟁력 강화를 외쳐댔다.

20년이 지나 마침내 쌀은 전면 개방됐다. 당장 쌀값이 폭락했다. 최근 2년간의 풍작과 더불어 쌀 개방이라는 심리적 영향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말에 정부는 밥쌀 수입 공고를 냈다. 연말을 맞은 농민들은 더욱 허탈하다.

작금에 쌀이 보여주고 있는 문제가 바로 우리농업의 문제다. 수입개방 공급과잉 가격폭락으로 이어지는 공식이 바로 우리 농업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이제 모든 농산물이 수입농산물로 인해 공급 과잉 상태에 와 있다. 어느 품목 하나 예외가 없다. 그래서 여지없이 농산물 가격은 생산비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역시 대부분의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

정부는 과잉생산을 탓하고 있지만 본질은 수입농산물이다. 농산물시장을 대부분 수입농산물에 뺏긴 지금 우리농민들이 수급균형을 맞춰 가격을 보장받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의 파고는 그칠 줄 모른다. 지난 20일을 기해 한-중 FTA, 한-베트남 FTA, 한-뉴질랜드 FTA가 발효됐다. 그리고 TPP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피해대책은 농민들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않고 있다. FTA 피해보전 직불금은 법에도 없는 수입기여도를 적용해 제도를 무력화 시켰다.

올해는 전국 농협 조합장 동시 선거도 치렀다. 부정선거의 대명사로 알려진 조합장 선거를 공명한 선거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선거운동이 제한적이라 실질적인 후보 검증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깜깜이 선거’라는 오명을 쓰고 끝났다. 내년 초 농협중앙회장 선거 역시 깜깜이 선거가 재현될 조짐이다.

우리 농업의 절반을 책임진다는 농협의 수장인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누가 출마하는지조차 농민들은 알 수 없다. 지역농협 조합장선거, 중앙회장 선거가 철저한 검증으로 조합원들의 의사가 선거에 반영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촉구한다.

축산 농가들은 매년 반복되는 가축전염병에 애를 태우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은 축산농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백신’ 의혹이 제기된 백신을 공급하고 항체형성률이 낮으면 농가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살처분 보상금 ‘삼진아웃제’를 도입, 2회 이상 전염병이 발생하면 살처분 보상금을 감액하기로 했다. 가축전염병은 철저히 축산농가의 방역 소홀로 몰아가고 있다.

쌀 전면개방, 쌀값 폭락, 농산물 가격 폭락, 구제역, 깜깜이 선거. 올해 대표적인 농민검색어가 아닐까.

정부는 올해 농정의 주요핵심을 수출농업, 6차 산업, 창조농업, ICT농업 등으로 설정했고, 올해의 농정성과로 꼽고 있다. 농민들은 상품을 이야기하는데 정부는 박스 디자인만 얘기하는 형국이다.

얼마 전에 중국으로 쌀을 수출한다고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했다. 그래서 우리 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됐는가? 6차 산업으로 농가소득이 얼마나 늘었나? 창조농업은 무엇을 창조했단 말인가? 첨단 농업이 폭락한 농산물가격을 받쳐 줬는가?

마치 과학기술과 정보화가 발달한 현대사회에 걸맞은 세련된 농업이 희망인 양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농업의 본질이 아니다. 이것을 모두 모아도 지금 우리농업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 비중이 아주 미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농업은 농민들이 손발에 흙을 묻히며 만들어가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11월 14일 69세 고령의 백남기 농민이 농사짓고 살 수 있게 해 달라 외치다 경찰의 살인적 진압에 쓰러졌다. 이 순간 백남기 농민은 서울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희미한 생명의 끈을 붙들고 있다. 의학적으로는 소생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백남기 농민은 보성의 논밭으로 돌아갈 수 없다.

백남기 농민이 처한 현실이 바로 우리농업의 현실이다. 권력과 자본에 철저히 유린돼 희망을 잃어가는 우리농업이 과연 소생할 수 있을까? 농민들은 묻고 있다. 

농민여러분 2015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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