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부녀회장 안 하겠답니다!

  • 입력 2015.12.26 13:12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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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이게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따뜻한, 그래서 걱정을 넘어 당황스럽기까지 한 연말연시입니다. 때가 때인지라 시절에 대한 걱정만큼 각종 모임들도 넘쳐납니다. 30여 가구가 사는 작고 조용한 우리 마을도 부녀회 총회하랴, 대동회 하랴 살짝 분주해집니다. 부녀회나 대동회에서는 소소한 일들로 가득찼던 한 해를 정리하며 지출 총결산도 하고 한 해 사업을 갈무리 합니다. 주민숙원사업은 우선순위에 부정이 없었는지, 내년에는 어떤 일을 우선으로 할지 등 주민들의 총의를 모으는 자리지만 역시나 핵심은 마을 주민 대표를 뽑는 임원선거에 있습니다. 다행히 올해는 이장을 뽑는 해는 아니므로 대동회는 좀 싱거울 수도 있다만, 문제는 부녀회 임원선출입니다.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부녀회장 선출로 홍역을 앓다시피 합니다. 부녀회장을 모두가 기피하는 까닭입니다. 작은 마을인지라 웬만한 부녀회원들은 돌아가며 회장직을 다 역임했다는 것입니다. 평양감사도 저 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다고 몇몇 회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회장직을 고사한 이들도 있다만 많은 숫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할 사람이 없다보니 그런 분들이 원성을 사는 모양새로 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마을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웃 마을에서는 이장 부인이 당연직으로 부녀회장을 맡도록 마을정관을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사실 회원 수가 적어서 부녀회장을 못 뽑는 것이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부녀회장의 지위와 역할의 문제가 더 큰 것이지요. 그 길이 비단길 꽃길이라면 맡은 사람이 맡고 또 맡더라도 자리를 채워 갈 것입니다. 하지만 부녀회장 자리는 정말이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마을의 뒷일을 알아서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을회관 청소관리며 소소한 마을행사의 음식준비와 마무리, 재활용품 분리수거며 헌옷 수집에 농약병까지 그야말로 일로 시작해서 일로 끝나는 자리입니다. 마을 일뿐만 아니라 면 행사에도 수시로 참여해야 합니다. 거기에 불참할 때는 하루 일당에 준하는 벌금을 내야 합니다. 그러고도 칭찬받기보다는 지적받기가 일쑤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고생하는 것을 기피하지는 않습니다. 고생한 만큼의 보람이 있다면야 가시밭길도 헤치며 나아갑니다. 하지만 부녀회장 자리는 고생은 실컷 하고도 아무런 영광이 없으니 누구나 기피하고픈 자리가 되어버렸고, 피할 수 없다면 어쨌거나 임기는 채우고 보자는 식의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회원 수가 적다해도 마을이장은 누가 해도 나섭니다. 떠밀리는 척 하며 자리를 맡으면 면이나 농협 등 기관에서도 이장님! 이장님! 하며 대접을 해주는 것은 물론이요, 각종 의결기구에 대표로 참석하여 소소한 지역행정을 논의하는 주체가 됩니다. 그러니 이장선출을 둘러싼 내홍도 제법 소문거리입니다. 말하자면 여성농민의 지위만큼 부녀회가 대접을 받는 것이겠지요. 물론 마을이장을 남성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면 23개 마을이장 중 딱 한 분이 여성이 있기는 합니다. 좋은 모범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그 모범을 따르려 하지는 않습니다.

마을의 부녀회가 농촌 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는 커다란 역할을 하는데도 세상 어느 누구도 부녀회장의 영광을 사회적으로 되돌려주기 위한 노력을 않고 있는 듯합니다. 높은 자리분들은 부녀회장 선출 때마다 몸살을 앓는 이 익숙하고도 안타까운 장면을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네요. 당연히 그래왔으므로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부녀회원들, 부녀회장들에게 맡기려 하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다들 싫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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