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업·농촌·농민의 미래

  • 입력 2015.12.26 11:16
  • 수정 2015.12.26 11:26
  • 기자명 이해영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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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영 한신대 교수

사실 우리 농업·농촌에 대한 농민의 가장 기본적인 생각은 이렇지 않을까 싶다. 농업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뿌리 또는 근간이어서 농업이 무너지면 곧 민족의 자주권이 무너진다. 그래서 농업, 민족, 자주는 이렇게 서로 안으로 맞물려 있어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고 인식되고 있다. 먹거리가 곧 목숨이고 목숨이 있어 민족이 이어지는 것인데, 이 먹거리를 공급하는 것이 농업이니 그럴 만도 하다. 또 먹거리를 외부에 의존하는 한 이는 스스로가 운명의 주인 되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런데 지난 20년의 우리 현대사는 바로 이 인식틀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첫째는 세계화다. 세계화란 곧 경제의, 자본의, 초국적 기업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요추는 물론 금융자본이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이를 통한 이윤창출은 지난 20년의 세계경제에서 월가와 런던 ‘시티’의 핵심적인 이해관심사 였다. 또 실제로 상품거래액과 비교해 수배 규모의 자본거래가 오늘 이 시점에도 전 지구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현 단계 세계경제의 갑은 단연 초국적 금융자본이다. 그리고 초국적 자본의 이윤과 자유를 위해 전세계 정부는 하나같이 일치단결 법률을 고치고, 국제기구를 만들고, 국제법을 만든다. 세계정부가 없는 상태에서 바로 이들이 정부다. 돈이 정부다.

약 20년 전 우루과이라운드와 더불어 WTO가 창설될 때부터 곧 우리가 세계화 흐름에 본격적으로 견인되어 간 이후부터 우리 농업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기 시작한다. 먼저 보자. 1990년 GDP대비 농업비중은 8.9%였다. 2014년 현재 2.1%다. 1990년 농민인구는 666만 명인데 비해 2014년 270만 명으로 60% 감소했다. 그나마 남은 농업노동력도 고령화되어 1995년 농가의 16.2%가 65세 이상인데 비해 2014년에는 39.1%이다. 경지 또한 1995년에는 국토의 20% 정도가 경지였다면 지금은 16.9%다. 농업붕괴로 1990년 43.1%였던 식량자급률이 2014년 24%로 주저앉아 식량의 7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한다. 이 정도면 지난 20년, 세계화 20년 만에 우리 농업·농촌·농민은 ‘폭망’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게다.

둘째, 세계화가 글로벌 경제의 추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자유화’ 혹은 개방이었다. 개방이란 말은 그 자체로 상당히 어폐가 있는 말이자 동시에 특정한 프레임이다. 무역자유화, 정확히 말하면 시장접근(market access)이란 전문용어를 의도를 가지고 풀어쓴 용어다. 해외 상품이 국내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관세, 비관세 장벽을 철거한다는 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의 농업·농촌·농민의 위기는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 특정한 정책의 결과 특히 개방과 FTA라는 국가정책의 결과에 기인하는 바가 상당하다. 관변연구소 자료에 2003~2013년 곧 FTA 10년의 결과 그 경제 효과는 참으로 미미하다. 내세울게 없을 정도다. 사실 FTA는 자동차를 위해 한다고 해도 무방한데 이 기간 자동차 수출은 63%증가했는데, 수입은 224%증가했다. 전기전자는 같은 기간 오히려 수출흑자가 감소했다. 반면 식품 등을 포함한 농업관련 산업의 적자는 676%가 증가, 개방정책의 피해가 우리 농업·농촌·농민에 집중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세 번째는 경제력의 집중화다. 일전에도 한 번 지적한 적이 있지만, 우리 농업이 차지하는 GDP대비 부가가치 비중은 2013년 기준 2.1%에 불과하다. 반면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그것은 4.73%인데, 그 중에서도 삼성전자 하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3.1%다. 그래서 농업 전체가 삼성전자 하나에도 못 미친다는 말이다.

경제논리로 산업논리로 접근한다면 농업이 사라져도 삼성전자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농업에 대한 홀대는 어쩌면 당연하다. 갈수록 경제력 집중이 심화될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앞으로 농업 대 삼성전자의 격차는 더욱 더 벌어지고, 여기에다 정부가 친 재벌 행보를 계속한다면 그 격차는 더 빨리 벌어질 것이다.

농업·농촌·농민의 위기는 가속화될 것이다. 그리고 농업=민족이라는 정신적 지줏대도 더 이상 이를 막아주지 못한다.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 가치의 발본적 전환이 없이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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