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식품부, 아군인가 적군인가

  • 입력 2015.12.18 16:05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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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외모 뒤로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이상을 품고 있는 이근수 한우자조금관리위원장은 이런 말을 한다. “농식품부는 농민이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농민은 농식품부와 손잡고 기재부나 산자부와 싸워야 한다.” 말이야 응당 맞는 말이지만, 특히 요즘 같아선 이 말이 떠오를 때마다 씁쓸한 심정을 달래기가 힘들다.

수입 농축산물은 점차 늘어나고 농가는 사지로 내몰리는데 농식품부의 농업정책은 정작 핵심을 비껴가고 있다. 올해 쌀 고정직불금을 ha당 10만원 인상했다지만 인상분만큼 변동직불금이 낮아지는 구조라 농가가 받는 전체 직불금엔 변화가 없다. 변동직불금의 목표가격을 2만원 정도만 인상해도 농가는 현재보다 2배 이상의 직불금을 받을 수 있다.

FTA 피해보전직불금도 마찬가지다. 내년부터 보전율을 5% 상향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에 따른 직불금 증가액수는 가장 단위가격이 높은 축산에서도 몇 천원에 불과하다. 법적 근거조차 명확지 않은 ‘수입기여도’ 반영을 폐지한다면 직불금 단가는 몇 배로 뛰거나 혹은 작목에 따라 없던 직불금이 생기기까지 하게 된다.

물론 농가 지원금액을 몇 배씩이나 늘리게 되면 가뜩이나 부족한 예산으로 이를 감당해낼 재간이 없다. 현실적으로 힘든 건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농식품부가 할 일은 인정할 부분을 인정하고 문제의 포커스를 부족한 예산으로 제대로 맞추는 일이다. 그것을 덮어둔 채 직불제 시행으로 쌀 농가가 소득의 97%를 보전받는다 홍보하고, 쥐꼬리만한 보전율 개선을 1년을 벼른 한-중 FTA 대책으로 발표하니 모순은 쌓이고 농민들이 모든 불만을 제도 자체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부족한 예산을 더 유치하기 위해선 예산이 부족함을 강력히 호소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농식품부가 정책의 미흡을 인정하고, 그 원인으로 예산의 부족을 밝히고, 농민과 손잡고 기재부와 투쟁하는 그림은 이근수 위원장의 이상 속에서나 존재해야 하는 걸까. 그럴듯한 겉포장으로 달랠 수 있을 만큼 농민들은 어리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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