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47회

  • 입력 2015.12.13 13:31
  • 수정 2015.12.13 15:17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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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선택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다. 60호가 넘던 마을의 가구 중에 두어 해 사이에 무려 여덟 집이나 마을을 떠났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면내의 어느 마을이나 비슷한 정도로 고향을 뜨는 사람들이 생겨나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젊은이들이 중학교 졸업만 하면 서울로 가는 바람에 점점 마을에는 젊은이들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런데 선택이 수족처럼 부리던 천호중이가 어느 날 술 한 병을 차고 와서 고향을 뜨겠다고 할 때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난 이제 더 못 버티겠다. 서울로 뜨기로 했어.”

나이가 한 살 많은 호중과는 진즉부터 너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아니 왜? 서울서 누가 오래?”

물어보나 마나 호중이 서울에 별다른 연고가 있을 리 없었다.

“몰라서 묻냐? 하긴 너야 뭔 걱정이 있을랴마는 우리야 어디 사는 꼴이 어디 사람 사는 꼴이냐? 암만 생각해도 앞길이 안 보이고.”

▲ 일러스트 박홍규

동업하던 고향농산은 진즉에 정리하여 제 몫을 받았고 논밭도 삼십 마지기가 넘는 선택으로서는 사실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일은 없었다. 새마을지도자와 공화당 면책 자리에서 떨어지는 돈도 제 용돈을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마을 주민들 거개가 살림이 쪼들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전보다 훨씬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호중의 말은 의외였다.

“뭔 소리야? 그래도 호중이 늬는 살만한 줄 알았는데.”

“살만 하긴, 젠장. 그깟 논 몇 뙈기에서 나오는 것 가지고 이자 갚기도 힘들다.”

“빚을 졌어? 뭐한다고 빚을 졌냐? 아직 애들 학비가 많이 들어갈 때도 아니고.”

호중은 열한 살짜리 맏이 밑으로 딸 둘을 더 두고 있었다.

“지난번에 지붕 개량할 때 들어간 돈도 빚인데 마누라가 바람이 들어서 텔레비전에 냉장고까지 안 들여놨냐. 말 타믄 견마 잡히고 싶다더니 요새는 세탁긴가 뭔가도 사내라고 하고. 참 나.”

사실 마을에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처음 들인 사람은 선택네였는데 그 퍼지는 속도는 무섭도록 빨랐다. 텔레비전이야 애들 등쌀에 어쩔 수 없이 샀다지만 날이면 날마다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전기밥솥이며 냉장고, 세탁기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부녀자들이었다. 처음에 밥솥 계를 한다, 냉장고 계를 한다 하더니 순번이 다 돌기도 전에 저마다 미리 빚을 내어 장만하기에 이르렀다. 서울 공장으로 돈 벌러 간 자식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냉큼 전자제품부터 들여놓는 게 자랑이자 유행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농사지어서 나오는 빤한 수입에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살림 규모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서울로 가서 어찌할려고?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이 서울에서 무슨 일을 하겠어?”

“사실은 말이다. 저기, 내 길갓논을 말여, 누가 사겠다는 거여. 그래서 허튼 말로 천오백 원을 불렀는데 덜컥 사겠다구 하네. 솔직히 그런 임자 만나는 것두 천행이다 싶어. 이 참에 서울로 가려고 그런 작자가 나타났나 싶고.”

놀라운 말이었다. 아무리 큰길가에 붙은 논이라고 해도 천오백 원이면 보통 거래되는 가격보다 오륙백 원은 비싼 가격이었다.

“천오백 원? 아니 누가 그렇게 산대?”

“난 얼굴도 못 봤어. 읍내에서 복덕방하는 당숙이 흥정을 붙인 건데 서울 사람이라고 하대.” 호중에게는 그 논 말고도 대여섯 마지기가 더 있었다.

“일단 길갓논 판 돈 가지고 서울로 가보려고. 정 안 풀리면 다시 내려오는 거지, 뭐. 작년에 서울 간 광식이한테 편지가 왔는데 집 짓는 데만 따라 다녀도 농사짓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니께 여기보단 낫겄지.”

그 해 가을에 천호중이 말고 한 집이 더 마을을 떴다.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이 살기 좋아졌다고 하는데 고향을 떠나는 사람은 점점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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