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유전자조작쌀의 꼼수

  • 입력 2015.12.13 13:28
  • 수정 2015.12.13 15:18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2014년 정부는 쌀시장 전면개방을 선언했다. 전 국민이 세월호로 인해 정신이 없는 사이 쌀시장 개방을 위해 필요한 모든 절차마저 아주 신속히 처리했다. 농민을 비롯한 전 국민들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장개방을 단행한 정부는 아주 그럴 듯한 말로 마치 모든 대책이 다 마련되어 있는 듯 농민과 국민을 속였다. 당시 그들이 내놓은 정책이란 어이없게도 2004년에 내놓은 정책이나 그리 달라진 바도 없는 것이었다. 쌀가공산업육성이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리고는 쌀가공산업육성법까지 만들었다. 2014년 그들의 대책은 거기에 더해 가공하기 좋은 벼종자 개발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솔직히 이런 정책은 하나마나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가공산업과 종자산업의 돈벌이를 위한 것이지 결코 농업과 농민들을 위한 정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닥 희망을 가진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한 가닥 희망마저 여지없이 무너뜨린 것이 올해 9월 농촌진흥청 산하 유전자조작농산물(GMO)실용화사업단 단장의 발표였다.

‘가공하기 좋은 쌀’만으로도 문제의 본질은 빗겨가는 것이다. 쌀은 밥을 위한 것이지 가공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가공하기 좋은 쌀이 단순히 새로운 종자, 예컨대 지금까지처럼 정부보급종이라는 이름의 종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던가 말이다. 그들이 말한 가공을 위한 종자는 ‘유전자조작종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도 당당히 그 어떤 사전 준비도 없이 발표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가 발간하는 바이오안전성백서 2015년 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안전성 평가를 완료하고 안전성 심사를 준비 중인 작물은 대사성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는 ‘레스베라트롤’ 생산 고부가 GM쌀이다. 쌀을 주식으로 먹는 우리 국민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향후 산업소재로 활용가치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향후 이 GM쌀이 국민들의 공감대가 조성돼 상용화될 경우 우리 쌀의 가치 증진과 함께 소비·수요확대를 통한 농가소득 증대와 식량안보의 기본인 주곡의 안정적 생산기반 확보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GM쌀이 안전성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당장의 농가재배 등 상용화가 어려운 만큼 밀폐된 공간에서 캘러스 및 세포배양액을 활용한 고가 화장품이나 기능성물질 등 산업소재 생산을 우선 추진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쌀이 바로 지난 9월 발표한 항산화작용을 하기 때문에 화장품원료로 쓰기 위해 산업용 GM쌀 생산승인을 받겠다고 발표한 그 쌀이다. 즉, 원래는 식용이 목적이었지만 일단 산업용으로 시작하겠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것이 바로 ‘전문가’의 의견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가가 누구일지는 뻔하다. 이 쌀 개발을 위해 함께했던 과학기술자들일 것이다. 아니면 이 GM쌀 생산승인을 시작으로 자신들이 개발한 GMO 상용화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과학기술자들일 것이다. 어쩌면 이를 통해 돈벌이를 제대로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종자업자일 수도 있겠다.

지난 2002년 미국이 GM밀 재배를 시도했을 때 자신들의 주곡이라는 이유로 엄청난 반대에 부딪쳐 재배를 포기했다, 그리고 지난 2013, 2014년 GM밀의 불법유출이 확인되었을 때 미국은 그때까지 없었던 GMO표시제를 법으로 채택했다. 지구상에서 GMO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미국에서조차도 자신들의 주곡만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문가들의 의견은 뭐란 말인가.

바이오안전성의정서와 그에 따른 우리나라 GMO법에는 GMO에 관해서는 사회·경제적 영향을 고려하도록 정하고 있다. 즉, 환경·생태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체의 건강문제만이 아니라 GMO로 인한 사회·경제적 문제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쌀이 주식인 우리나라에서 GM쌀을 상용화한다고 말했을 때 식용보다는 산업용으로 우회하라고 의견을 내는 전문가는 있어도 어떻게 GM쌀이 우리나라의 벼농사를 비롯한 농업에 미칠 사회·경제적 영향을 말해줄 전문가는 하나도 없단 말인가.

정부의 무자비한 물대포 폭력으로 의식을 잃은 채 입원해 계신 농민의 곁에 그 어떤 정치인도 함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꾸 겹쳐진다. 농업을 함께 걱정할 정치인 하나, 전문가 하나 제대로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