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정책, 쌀값 지지 기능 외면했다

추곡수매제 폐지 … 공공비축 및 직불제 도입이 변곡점 역할
농가 실질소득 손실·농협 RPC 경영난 불러

  • 입력 2015.12.06 19:55
  • 수정 2015.12.06 19:57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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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지난 20년간 정부의 양곡정책은 정부 책임 강화에서 시장기능 확대로 방향이 틀어졌다. 이는 수입물량 증가와 맞물려 쌀 농가 실질소득 손실과 농협 RPC 경영난을 불러오고 있다.

1993년 12월 9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특별담화에서 쌀 시장 개방을 발표했다. 김 대통령은 쌀개방 불가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임기 첫 해를 넘지 못하고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쌀 시장 부분개방을 받아들였다. 쌀 관세화 개방은 피했으나 1995년부터 쌀 소비량의 1%를 시작으로 수입쌀의 최소시장접근(MMA)을 허용해야 했다. MMA 물량은 2004년엔 국내 소비량의 4%인 20만4,000톤까지 늘었다.

1995년 이전엔 쌀 수입은 금지됐고 정부는 이중곡가제를 기본으로 한 추곡수매제로 벼농사의 소득을 보전했다. 추곡수매제는 정부가 시장가격보다 높게 주곡을 수매해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방출하는 제도로 수매가격과 수매물량은 국회동의를 거쳐 결정됐다.

추곡수매제는 1995년을 기점으로 매년 약 750억원씩 규모가 축소됐고 2005년 완전히 폐지됐다. 그동안 벼 재배면적은 1995년 105만6,000㏊에서 2004년엔 100만1,000㏊로 줄어들었다. 2001년엔 농협중앙회 조사 결과, 사상 최초로 수확기 산지 쌀값이 전년대비 4.1% 하락했다. MMA물량 증가로 재고가 늘어난 게 원인이었다.

정부는 2004년 미국, 중국 등 9개국과 협상을 벌여 쌀 관세화 개방을 다시 10년간 유예했다. MMA 물량(5% 관세)은 기준년도(1988~1990) 소비량의 4%에서 2014년 8%(40만9,000톤)까지 증량하기로 했다. 당시 쌀 협상은 미국쌀 시장점유율 보장과 타 품목 개방 등 이면합의 논란이 불거지며 총체적으로 실패한 협상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에 정부는 2005년 추곡수매제 대신 공공비축제와 소득보전 직접지불제(직불제)를 도입했다. 공공비축제는 정부가 시세에 벼를 매입하고 방출해 WTO가 정한 국내보조 감축대상이 아니다. 직불제는 변동직접지불로 시세가 기준가격보다 떨어지면 그 차액의 85%를 보전하는 방안이다.

두 제도는 본질적으로 쌀값 지지 기능이 없어 사실상 쌀값 하락을 전제하는 문제가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05년 농업전망에서 쌀 80㎏당 농가판매가격이 2004년 15만9,000원에서 2008년엔 14만7,000원, 2014년엔 12만2,000원까지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 2005년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도입한 공공비축제와 소득보전 직접지불제는 사실상 쌀값 지지 기능을 못해 농가 실질소득의 하락을 불러왔다. 사진은 전남 영광의 한 들녘에서 가을걷이를 하는 모습. 한승호 기자

2005년 당시 박웅두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공공비축제에 관해 “추곡수매제와 보완하는 차원에서 병행 시행됐어야 했다”며 매입물량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직불제에 대해선 “목표가격이 생산비를 반영하지 못하고 매년 물가인상률도 반영하지 못한다”며 “가격하락의 85% 보전은 점진적인 가격하락을 유도해 농가에게 이중의 부담을 안겨준다”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쌀값 지지에 손을 놓자 가격하락의 부담이 지역농협 RPC들을 짓누르고 있다. 현재 농협 RPC의 심각한 경영난은 3년 연속 벼 생산량 증가뿐 아니라 가격하락을 전제로 한 제도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쌀 품질을 높이려면 사실상 정부의 책임을 전가 받은 농협 RPC의 건조 및 저장시설에 지속적인 투자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지역농협들은 쌀값 하락에 따른 경영난으로 이를 주저하는 게 현실이다. 한 지역농협 RPC 관계자는 “급식 관계자나 소비자들이 RPC시설을 둘러보고 매력을 느껴야 계약을 할 것 아닌가. 벼 수매량이 늘면서 저장시설도 확충해야 하는데 쌀값 하락에 적자 안 보는 것도 힘들어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밥쌀용 쌀 수입이라도 중단해 도매상들이 가격 때문에 100% 국내산인 농협RPC 쌀을 외면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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