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불④] 성냥, 모닥불, 그리고…

  • 입력 2015.12.06 12:37
  • 수정 2015.12.06 12:38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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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아침, 눈을 뜬다. 그런데 어이쿠, 입고 있던 바짓가랑이가 척척하다. 어찌 된 일일까? 손으로 바닥을 더듬는다. 이부자리도 이미 젖어 있다. 아, 결국 또…. 그 때의 그 절망스러움과 열패감을 어른들도 겪어봐서 알고 있다. 그래서 ‘불장난하면 오줌 싼다’는 경구는 아이들에게 ‘불조심’을 각성시키는 데에 꽤 유용하게 먹혀들었다.

아이들은 불을 좋아한다. 아부지가 마당에 모닥불이라도 피우는 날이면 나도 괜히 신이 나서 막대기로 쑤석거리거나 고구마를 구워 먹겠다고 부산을 떨기도 했다. 그럴 때 아쉽지만 털고 일어나서 방안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은 엄니나 아부지의 잔소리가 아니라, ‘이러다 오늘 밤에 오줌 쌀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농촌 아이들은 늘 불을 가까이에 두고 살았다. 서너 명이 모이면 그 중 누군가는 꼭 주머니에 성냥을 갖고 있었다. 성냥이 오직 불을 피우기 위해서만 필요한 건 아니었다. 어느 날 우리는 특별한 실험을 했다. 종석이가 주머니에서 ‘에므왕(M₁)’ 탄피를 꺼냈고 영길이는 성냥을 한 움큼 가지고 왔다. 우리는 성냥개비에서 대가리의 성냥골을 일일이 헐어낸 다음 그것들을 모아서 탄피 속에 넣어 채웠다. 그러고는 영길이가 가지고 온 큰 쇠못을 대가리부터 탄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종석이가 탄피를 세워 잡고, 영길이는 못을 잡았다.

“자, 인자 됐응께, 시게 쳐봐.”

나는 주먹 만한 돌멩이를 쳐들었다가 못 꽁무니를 향해 세게 내려쳤다.

-빠앙!

제법 큰소리가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통쾌했다.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탄피 속에서 피어오른 화약 냄새가 뭐랄까, 옛적 수렵시대의 수컷의 야성을 자극…아, 이건 너무 과장된 표현이다. 어쨌든 그 때 우리는 시골에서 일상적으로 대하는 자연 속의 그것들 말고, 뭔가 새로운 자극에 목말라 있었다. 아이들의 그런 바람을 알았을까, 큰 마을의 구멍가게에서는 화약이 볼록볼록 들어 있는 화약종이판을 팔았다. 하나씩 찢어서 돌로 때리면 빵, 소리가 났다. 운동회 때 달음박질 출발신호를 할 때 선생님들이 화약총에 넣고 쏘는 그것이었다.

그 무렵 대처에 다녀온 상남이 형이 신기한 성냥을 가지고 나타났다. 딱성냥이었다. 형은 성냥개비 하나를 꺼내더니 나무기둥에 대고 휙, 그었는데 놀랍게도 불꽃이 일었다. 그 형은 이어서 절구통 옆구리며, 심지어는 신고 있던 운동화 뒤축에도 쓱쓱 그어대어서 불꽃을 만들어 냈다. 그야말로 요술성냥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자랑만 실컷 하고는 가버렸다.

우리는 들판이든 놀이터든 하굣길의 시냇가든 가리지 않고 시시때때로 불을 피웠다. 땔감이야 사방에 널렸으므로, 콧물 두어 번 훌쩍거릴 참이면 풍성한 모닥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철따라 모닥불에 서리해온 보리나 밀, 혹은 콩을 구워먹기도 하고 메뚜기를 잡아다 구워서 모자란 단백질을 충당하기도 하였다.

한 번은 소 먹이러 갔다가 불을 피워놓고 쬐고 있는데, 꽃뱀 한 마리가 하필 모닥불 곁을 지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무서워서 저만치 달아났다. 그런데 종석이 녀석이 막대기로 그 뱀을 모닥불 한 가운데로 던져 넣었다. 한참 만에 종석이는 숯덩이처럼 된 뱀을 한 토막 뚝 분질러서는 먹어보라며 내밀었다. 그 뒤 한참 동안, 나는 그 야만스런 녀석 가까이에 다가가지 못 하였다.

불을 쬐다가 시들해져서 누군가 “집에 가자”고 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모닥불 주위로 빙 둘러선 다음, 제가끔 고의춤을 풀고서 깔끔하게 소화(消火) 작업을 했다. 불이 꺼지면서 연기와 함께 피워 올라 콧속으로 파고드는 그 지린내가 아주 조금은 고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불장난이 큰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동네 들머리에 거대한 팽나무 고목이 있었고 그 고목에 의지해서 상평이네 아버지가 보릿짚을 높다랗게 쌓아두었는데, 우리 세 녀석이 근처에서 불을 피우고 놀다가 그만 그 보릿대 더미에 불이 붙어버렸다. 불길이 커지자 겁이 난 우리는 일단 도망을 쳤다.

그 날 밤 결국 난 바지를 척척하게 적셨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자던 둘째 동생 녀석이 그날따라 더 질펀하게 싸버렸으므로, 다음 날 아침 엄니로부터 “시방 나이가 살인디…” 따위의 지청구를 안 들어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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