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논 다 팔아도 빚 못 갚아”

물가·농자재비 다 오르는 데 쌀값만 20년 전 그대로 … 빚만 늘어
쌀값 하락에 임대료 정산 “남는 게 없다” … 직불금도 무용지물

  • 입력 2015.12.04 12:01
  • 수정 2015.12.04 12:03
  • 기자명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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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의 한 농가가 지난달 30일 농협RPC로 쌀을 보내기 위해 톤백을 차에 실어 나르고 있다. 쌀 재고가 넘쳐 농협은 12월이 다되서야 추가물량을 받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박선민 기자]

1년 동안의 땀방울을 거둬들이고 수확의 기쁨을 맛봐야 할 농민들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다. 농가 대부분이 논농사를 하는 전북 김제시. 김장을 맞아 한상 가득 차려진 밥상 앞에 오랜만에 모여 앉은 주민들의 주된 화두는 쌀값이다. 쌀값이 하락해 소득도 떨어진데다, 재고만 쌓여 쌀값이 어떻게 되는지, 재고를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 이야기를 주고받기에 바쁘다.

현재 김제 지역 쌀값은 12만6,000원에 형성돼 있다. 무려 20년 전 가격과 맞먹는 값이다. 농민들은 물가도 농자재비도 다 오른 마당에 쌀값만 안 오른다고 토로했다. 김제에서 논 2만평을 농사짓는 조경희씨는 “물가는 다 올랐는데 쌀값만 안 오르니 억울하다. 예전엔 쌀 한가마 팔면 자전거 산다고 했는데 지금은 10가마 팔아도 못 산다”며 현실을 전했다.

쌀값이 바닥이라 재고량이 넘쳐나다 보니 쌀을 사는 곳도 없다. 농민들은 쌀 팔 데가 없어 창고에 쟁여두고 있는 실정이다.

김제 박흥식씨는 “농협 계약재배 물량이 다 차서 RPC로 내지 못하고 창고에 쌓아두는 상황이다. 재고량이 많아서 그런지 방앗간에서조차 쌀을 잘 안 산다”며 답답해 했다. 곡창지대인 서천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김제, 서천의 지역농협은 아직 쌀 매입가조차 책정하지 않고 있다. 전국 농협들 대부분이 그렇다. 보통 10월 즈음 책정되는 농협의 수매가는 시장가격을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올해는 농협 RPC에서 잠정가로 하고 나중에 정산해주겠단 식으로 쌀을 매입한다고 한다.

쌀값이 떨어지면 농가는 이중고, 삼중고에 처한다. 수확이 끝나고 10월 벼를 매입한 비용은 1년 간 들어갔던 영농자금을 갚는 데 쓴다. 그러나 쌀을 내지 못하는 지금 부채를 갚는데 손 쓸 도리가 없다. 충남 서천군의 최용혁씨는 일반 정미소에다 쌀을 내려고 준비 중이다. “더 가지고 있어봐야 쌀값이 오를 것 같지도 않고 빨리빨리 정리해야 된다”며 “농협에 빚도 갚고 농약방, 주유소 등에 외상했던 농자재비들도 12월엔 다 갚아야 해서 그 이전엔 나락을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료 정산도 문제다. 쌀값이 떨어진 탓에 임차인과 임대인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쌀값이 13만원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임대료는 지난해 쌀값에 따라 15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김제의 한 농민은 임대료 지급에 대해 “임대 논 주인들은 농가들이 직불금을 받으니까 쌀값 12만5,000원에서 직불금을 보태 14만원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고 있다”며 “24필지를 임대하고 있는데 전체 임대료를 비교하면 396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두 필지가 사라지는 건데 이게 말이 되나”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농민은 “1필지에 25가마가 생산되면 그 중 13가마를 임대료로 내고 12가마를 수익으로 얻는데, 그나마 로터리값, 종자값, 비료값, 나락 베는 비용 다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차라리 임대로 주는 돈으로 포장마차 차리는 게 남는 것 같다”고 자조했다.

무엇보다 직불금이 농사를 짓는 본인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현실이다. 직불금 부정 수령은 농촌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농민과 농지 주인이 1:1로 구두로 계약을 맺어 농사를 짓다보니 실제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직불금을 다 수령하지 못하는 폐해가 발생한다.

논농사의 40%를 임대계약으로 농사짓고 있는 서천의 한 농민은 “직불금 수령방식은 구두로 합의 하에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직불금이 얼마 나왔다 통보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며 “어쩌겠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달라는 대로 임대료를 주는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전했다. 구두계약에 따라 농가가 받는 직불금도 천차만별이라고 귀띔했다. 임대 논의 명의가 논 주인으로 돼 있는 이상 임대농들은 직불금, 영농 보조금 등에 권리 주장을 할 수 없다. 비싼 임대료와 직불금 나눠먹기에 임대농들은 두 번 우는 셈이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쌀값에 비난의 화살은 쌀값을 제대로 견인하지 못한 정부정책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 변동직불금이 현실적으로 소득보전에 도움이 되지 못하다는 불만이 높다.

쌀값이 평균가보다 더 떨어진 지역은 변동직불금을 덜 지급받을 수밖에 없다. 올해 충남, 전남, 전북 등의 대표적 곡창지대는 쌀값이 평균가(15만1,000원)보다 1~2만원가량 낮게 형성됐다.

쌀 한 가마(80kg) 가격이 13만원일 때 농가들은 한 가마당 변동직불금으로 약 3만3,000원((18만8,000원-13만원)×0.85-한 가마당 고정직불금 1만5,873원)을 지급받아야 하지만, 평균가인 15만원을 적용했을 때 변동직불금은 1만6,000원 정도로 약 2배를 덜 받는 셈이다. 쌀값 보전에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김제, 서천 지역의 농민들은 한 목소리로 “쌀값 하락으로 생산비조차 보전이 안 되는데 직불금도 쌀값 하락만큼 제대로 적용이 안 되니까 화가 난다”고 말한다.

서천군 화양면에서 논농사를 짓는 임채고씨는 직불금 가격 정산 문제를 지적했다. 임씨는 “직불금을 받아도 농민들은 생활이 여전히 어렵다. 직불금 목표가와 평균가가 생산된 나락 가격이 아니라 가공 쌀 가격을 반영하기 때문에 현장 농민들이 쌀값 하락으로 체감하는 어려움을 반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쌀값이 형성 안 돼 역시 창고에 쌀을 보관하는 중이라는 임씨는 “농민들은 항상 안 입고 안 먹고 해야 한다”며 “우리는 쌀값을 터무니없이 올려달라는 게 아니라 쌀값과 물가를 형평성에 맞게 조정해줬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라는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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