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46회

  • 입력 2015.12.04 11:54
  • 수정 2015.12.04 11:57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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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새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세월이었다. 부녀자들이 단체로 관광을 가고 평생 집 밖에 나갈 일 없을 줄 알았던 아내가 가족계획요원이 되어 교육을 다니게 되었다. 우스운 것은 아직 두 돌도 되지 않은 막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나다니는 것이었으며 자신은 셋이나 낳은 터수에 남들에게는 하나만 낳으라고 강권을 하는 노릇이니 어찌 보면 딱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평촌댁은 그게 아닌 듯 훗날 나이가 들어서도 가장 기억나는 인생의 한 대목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당시의 부녀회와 가족계획운동을 들곤 했다.

▲ 일러스트 박홍규

뿐만이 아니었다. 마을에서 처음으로 선택네 집에 텔레비전이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해가 가기 전에 무려 다섯 집에서 그 비싼 텔레비전을 장만했다. 물론 그 중 둘은 막바지로 월남에 갔던 아들이 들고 온 것이었다. 텔레비전을 샀다고 당장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안테나만 달면 틀림없이 나올 거라던 금성사 직원 말과는 달리 지붕 위에 안테나를 세우고 아무리 돌려보아도 제대로 화면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안테나에 따로 전파 증폭기를 달고 멀리 장자봉 꼭대기에 세워진 공청안테나의 전파를 수신하여 겨우 화면이 나왔다. 그날로 마을 또래들을 모두 휘어잡게 된 것은 큰 아들 용범이었다. 텔레비전을 보여줄 아이들을 선별하는 권력을 쥐자 단숨에 골목대장이 된 것이었다.

“반상회가 생겨났다구?” 작은아버지가 선택에게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예. 매월 25일 날에 전국적으로 하기로 했어요. 우리 집에서도 두 사람은 가봐야겄쥬. 근데 왜요?”

1976년에 전국적으로 반상회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게 일정 시대에 있던 것 아뉴? 형수님.”

일제시대에 똑같은 이름으로 반상회가 있었다니. 선택으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있었지요. 아부님이 늘 갔었으니께.”

어머니도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그런 게 있었던 모양이나 어딘지 떨떠름했다.

“그 때야 일본 놈들이 했던 거고, 지금 하는 건 뭐, 우리 농촌을 잘 살게 하려는 거 아니겠어요? 나도 아직 자세한 내용은 못 들어봤지만.”

반상회에 대한 자세한 지침을 받아보고 선택은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마을 공동체의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지만 실제 반상회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공교육이었다. 그 다음이 국정 홍보, 국민행동요령이었다. 반상회 불참자에게는 불참 사유서를 내게 하고 마을에 따라서는 자체적으로 벌금을 물리기도 했다. 공무원이 주고 가는 내용을 낭독하듯이 줄줄이 읽고 나면 돌아가면서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더듬은 다음 그것을 보고해야 했다. 반공교육이야 써준 것을 읽는 것으로 대치하고 딱히 더 할 게 없었지만 국민행동요령이라는 게 골치였다.

“요번에 우리 마을에 외부에서 온 사람이나 수상한 사람은 없었나유?”

이건 공식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질문이었다.

“혹시 유언비어를 들은 사람은 없구유? 어디 나가서라두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 본 적이 있으믄 얘기덜 하세유.”

이것도 이장이 꼭 던져야 하는 질문이었다. 듣거나 보고도 신고하지 않는 것도 큰 죄라고 을러댔으므로 사람들은 혹 지난 한 달 동안 그런 일이 있었는지 곰곰 돌이켜보아야 했다.

“유언비어 같은 거 떠드는 불순분자두 간첩이나 맨 한 가지니께 이웃이구 뭐구 하는 말을 잘 들어야 써유. 사실 우리 마을에는 없다구 봅니다만 면내루 치면 그런 삐딱한 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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