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창지대’ 철원평야에 하우스 들어선 이유는

쌀농사 희망 없어 하우스로 … 하우스 농사도 가격폭락 ‘신음’

  • 입력 2015.12.04 11:46
  • 수정 2015.12.04 11:59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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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안혜연 기자]

▲ 지난달 30일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의 한 동산에서 바라 본 들녘 위로 과채류를 재배하는 시설하우스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철원오대쌀’로 유명한 철원군의 경우도 최근 하우스 농사가 늘고 있는 추세다. 한승호 기자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의 어느 언덕에서 드넓은 철원평야를 내려다보니 빼곡하게 들어선 시설하우스가 한 눈에 보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논이었던 곳이다. “산에 올라가서 아래를 보면 논바닥이 다 하얗다. 눈이 와서 하얀 게 아니라 하우스 때문에 그렇다.” 이는 ‘강원도 최대 곡창지대’, ‘철원오대쌀’로 이름 높은 철원군의 현 상황이다. 군내를 돌아다녀도 하우스 신축 공사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쌀값이 비싼 철원지역에서 논에 하우스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쌀농사 지어 먹고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약 10년 전 김화읍에서 시작된 하우스 농사는 지난 5년 새 급격하게 번졌다. 지금은 주 평야지대인 동송읍에서도 하우스를 병행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예전엔 모내기가 끝나면 농한기라 했던 철원군이지만, 지금은 서리가 내릴 때까지는 계속 농번기다.

철원읍에서 4년 전 꽈리고추 농사를 시작한 김병학(43)씨는 “일 년 동안 벼 농사 1만평을 지으면 4,000~5,000만원을 번다. 여기서 경영비를 제하면 2,000만원이 남는다. 생활비·학비 등을 감당하기 힘들다”며 “벼 농사 3,000평에서 나오는 소득이 1,600만원인데, 꽈리고추는 심은 첫 해 100평에서 9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그러니 하우스를 병행하는 농가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쌀은 수확해서 출하해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쌀값이 떨어지면서 여름 생활비 등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른 새벽에 꽈리고추를 따서 출하하면 그 이튿날 통장에 돈이 들어오니까 그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우스 재배면적이 늘어남에 따라 하우스 작물이 과잉 생산되고 가격폭락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지고 있다. 김씨도 첫 해에는 좋은 소득을 올려 하우스 시설비를 다 갚았지만, 2년 전 추가로 지은 하우스 300평에 대한 빚은 아직 남아있다. 올해 꽈리고추 값이 4kg 상자에 평균 5,000원 정도로 곤두박질 쳤기 때문이다.

김씨는 “4년 전엔 하우스 지원 신청자가 그렇게 많더니 2년 사이에 가격이 폭락하면서 하우스는 사양 사업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고 한숨을 쉬었다.

김화읍에서 파프리카와 토마토 농사를 짓는 김종필(47)씨도 “토마토는 2년 연속 개판이다. 그런데도 재배의향 면적은 늘어나고 있다. 김화읍이 하우스를 처음 시작한 곳인데, 지금은 김화읍 외에도 신규로 하우스에 진입하는 곳이 많다”며 “토마토·파프리카·오이 등 하우스 작목은 농사 환경이 비슷해 손쉽게 작목전환이 가능하다. 때문에 내년에 어느 작물이 가격이 좋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농민들은 솔깃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0년 전 파프리카 농사를 시작한 박남길(53)씨는 재작년 하우스를 크게 확장했다. 300평으로 시작했던 하우스는 현재 1,500평까지 늘어났다. 올해부터는 약 7,300만원의 비용을 들여가며 양액재배 시설도 지었다.

하지만 파프리카 가격이 폭락하면서 박씨의 고민도 깊어졌다. 그는 “전체 시설비용이 2억2,000만원이다. 최대 1,000평까지는 군에서 절반을 지원해 준다고 해도 1년 농사가 잘못 되면 손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체적으로 하우스 재배면적이 늘어나 무엇을 지어도 물량이 많다. 쌀농사가 희망이 없으니 하우스로 옮겨가고, 또 하우스가 많아지니 과잉생산 되고 농업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철원군 하우스 면적은 2011년 202ha에서 현재 397ha까지 증가했다. 반면 논벼 재배면적은 2010년 1만659ha에서 올해 1만200ha로 4.3% 감소했다.

철원군은 지난 2003년부터 비가림 하우스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사업이 확장된 것은 2012년부터로, 2012~2013년 동안 120ha가 넘는 면적에 군비 100억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2014년을 기점으로 토마토와 파프리카 가격이 폭락하면서 지원금과 면적을 줄여가고 있다.

조성근 철원군농업기술센터 농업정책과 주무관은 “쌀과 하우스 작물을 비교했을 때 단위 당 수확 금액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벼 농사 평당 수익이 3,000원이지만 과채류는 3만원 이상이다”며 “그러다보니 신규로 진입하려는 농가는 꾸준히 있다. 군도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 내년엔 신규 진입은 받되 지원 면적을 20ha로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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