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은 갓이 생명잉게

  • 입력 2015.11.29 14:23
  • 수정 2015.11.29 15:15
  • 기자명 박선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본지 박선민(오른쪽) 기자가 지난 24일 전남 나주시 동강면의 한 버섯하우스에서 김순애씨와 함께 이동작업대 위에 올라 새송이버섯을 수확하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박선민 기자]

11월말, 대부분 농한기에 접어든 지금 연중 생산이 가능한 버섯농가에 농활을 가기로 결정했다. 농활을 간 곳은 전남 나주 동강리에서 10년 째 새송이 버섯 농사를 짓고 있는 김순애씨 댁이다.

버섯을 사서 먹을 줄만 알았던 소비자로서 버섯이 어떻게 자라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어떤 작업과정을 거치는지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였다. 김씨에게 버섯 작업 과정을 들어보니 수확-선별-포장으로 이어지는 작업 과정은 어느 과채류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김씨는 선별 작업을 보여주겠다며 먼저 저장 창고로 가 오늘 수확한 버섯을 선별 작업장으로 이동시킨다. 선별작업과 포장작업은 출하차가 오기 전에 물량을 맞춰야 한다는 김씨는 버섯을 깎는 기계 앞에 앉는다. 기계 한 편엔 저장창고에서 갖고 온 버섯이, 다른 한 편에는 빈 상자가 놓인다.

▲ 박선민(왼쪽) 기자가 김순애씨의 설명에 따라 새송이버섯의 아래 부분을 다듬고 있다.

모터로 돌아가는 칼에 버섯 밑 부분을 집어넣으면 돌돌돌 모양이 예쁘게 깎여 지저분한 부분이 잘려나간다. 김순애씨의 손에서 버섯이 순식간에 휙 깎여 빈 상자에 크기별로 차곡차곡 쌓인다. 내 눈엔 버섯 크기가 고만고만한데 김씨는 버섯을 깎기 전에 이미 눈으로 등급을 감별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기계 앞에 앉아 조심스럽게 작업을 해봤지만 조금만 더 넣으면 내 손가락이 다치거나 버섯이 반으로 줄어들 것만 같아 작업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웬만하면 버섯의 갓을 잡고 편하게 깎고 싶었지만, “버섯은 갓이 생명잉게” 몇 번이고 말하는 김씨의 당부에 아주 조심스럽게 버섯을 다룬다.

갓이 버섯의 상품성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버섯 포장도 갓을 지키는 작업의 연속이다. 갓이 무너지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박스에 채워 넣어야 한다.

▲ 2kg 상자 안에 버섯이 상하지 않도록 담는 것도 일이다. 버섯 포장 작업에 나선 박선민 기자를 김순애씨가 거들고 있다.

초보치곤 잘한다는 김씨의 말에 우쭐해졌지만, 작업 후 버섯 등급을 다시 나누는 김씨의 손을 보며 선별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임을 감지했다.

선별작업 중 이처럼 자동화된 작업이 생긴 지는 3년 남짓. 자동화가 돼서 편하단 김씨는 예전엔 일일이 버섯을 손으로 깎아야 했다고 전했다. 사실 자동화라고 해도 사람이 다 보고 버섯을 얼마나 깎아야 하는지 맞춰야 한다. 김씨는 그게 노하우고 기술이라고 말한다.

버섯 가격이 요즘 어떤지 물어봤다. 버섯도 올해는 다른 농산물과 별반 다를 것 없이 가격이 떨어졌다고 한다. 원래는 2kg 상자가 7,000~8,000원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5,000원 선.

“동강리에서도 버섯을 많이 시작했는데 같이 한 사람들도 망해서 다 접었어”

종자 값, 운송비, 인건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덧붙이는 김씨의 말이 다른 채소 농가들과 겹쳐진다.

때마침 순천원예농협에서 출하담당자가 와서 버섯 상자를 가지고 갔다. 김씨는 순천원예농협으로 매일 2kg 상자 100개를 출하하고 있다. 담당자는 김씨에게 오늘 경매가격을 보고 내일 물량을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김장철엔 버섯 소비가 줄어들고, 가격도 안 좋게 형성되기 때문에 출하량을 줄여 공급량을 조절한단다.

점심을 먹고 오전에 따고 남은 버섯을 따기 위해 버섯장으로 들어섰다. 일반 비닐하우스보다 2배는 큰 규모다. 버섯장으로 들어서면 5층으로 된 버섯 배양층의 규모와 더불어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확 느껴진다. 일반 밭작물과는 달리 버섯은 병에 담겨져서 배양된다. 배양에서 수확까지 20일 남짓 걸리는데 10일은 배양 기간, 나머지 10일은 성장하고 수확하는 시기다. 성장속도가 남다른 버섯은 연중 이 20일을 반복하며 수확된다.

버섯도 과일과 같이 솎아주는 단계가 필요하다. 과일과 마찬가지로 상품성을 위해서 다발로 자라나는 버섯 중 2개만 놔두고 솎아주면, 그 2개는 집중적으로 영양을 공급받고 몸짓이 커져 상품성을 갖춘 버섯이 된다고 한다.

오늘은 수확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솎아줄 필요 없이 다 자란 버섯을 딴다. 우선 버섯 따는 법을 배운다. 이때도 갓이 생명이다. 다른 버섯의 갓을 안 건드리고 최대한 밑 부분을 깔끔하게 따는 것이 포인트다. 좌우로 버섯을 꺾어주면 쉽게 꺾인다는데, 생각보다 잘 꺾이지 않는다. 특히 뒷 부분에 있는 버섯들을 딸 때엔 앞 부분에 있는 버섯 갓을 건드릴까 노심초사다.

2층까지는 바닥에서 딸만한데 3층부터는 어떻게 딸까 의문이다. 버섯장을 이동하는 작업대가 버섯장 2층 높이에 있는데, 그걸 올라타고 이동하면서 윗 층 버섯을 딴다고 한다. 2m 남짓 돼 보이는 높이의 이동작업대 위에 일단 올라탔다. 혹여나 버섯을 따다가 떨어질까 다리가 후들거린다. 버섯 갓도 신경 쓰고 내 다리도 신경 써야 하니 버섯 따는 작업에 신경이 예민해진다. 버섯 배양층 사이도 멀뿐더러 이동판도 높고 위험해 버섯장은 여러모로 남자들에게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버섯은 적어도 나같은 초보에겐 무모한 도전이었다. 버섯 작업 ‘체험’을 하면서 “버섯은 아는 사람이 해야 해”라는 김씨의 말이 맴돌았다. 아주 미미한 작업량이었지만, 그마저도 해를 끼친 건 아닌지 걱정됐다. 수확도 선별도 포장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었지만 농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단 뿌듯함을 가지며 11월의 농활을 마친다.

 

기자들이 농촌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한 내용을 수기로 올립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