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불③] 부싯돌로 불을 만들다

  • 입력 2015.11.29 01:42
  • 수정 2015.11.29 01:43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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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우리들 사이에서 양남이 할아버지의 별명은 ‘킁킁 조부님’이었다. 그는 쉴 새 없이 코를 킁킁거렸다. 킁킁 조부님은 평생 단 한 번도 고무신이나 구두 따위에 발을 의탁해본 적이 없이, 손수 삼은 짚신만을 신었다. 그는 1970년대 중반에야 세상을 떠났지만 고스란히 ‘전통시대’를 살다 갔다.

그 킁킁 조부님은 나에게 부싯돌로 불을 켜는 모습을 구경하게 해준 할아버지이기도 했다. 내가 소년기를 지냈던 1960년대는 이미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지포라이터가 시골구석에까지 유행할 정도로 ‘개화된’ 세상이었기 때문에, 라이터나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지 않고 그 할아버지처럼 석기(石器)를 이용하여 불을 생산하는 경우는 그야말로 희귀한 사례였다.

하지만 양남이 할아버지가 담뱃불을 만들어내는 그 기구나 재료는 언제나 그가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쌈지에 들어있었고, 어쩌다 길가에 지게를 받쳐놓고 담배 한 대를 피울 때에도 잠깐 만에 불을 일으켜 붙였기 때문에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가을 날, 난 작심하고 양남이네 집에 놀러갔다. 양남이 할아버지는 마당 한 쪽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다. 그는 나무토막을 앞에 놓으면서 킁, 도끼를 치켜들면서 킁, 힘껏 내려치고나서 쪼개진 장작을 정리하면서 또 한 번 킁킁…연신 콧소리를 냈다.

“야, 느그 킁킁 조부님 담뱃불 킬 때 나한테 구겡 조깐 시케 주라.”

나는 미리 양남이에게 그렇게 당부를 했다. 우리가 한창 딱지치기에 열중하고 있을 때 드디어 킁킁 할아버지가 양남이를 불렀다.

“할애비 쌈지 조깐 갖고 온나!”

양남이가 방안에 들어가서 쌈지를 가지고 나왔다. 나도 양남이를 따라붙어 장작더미가 쌓여있는 헛간 앞으로 달려갔다. 할아버지가 쌈지를 열더니 작은 차돌조각 하나를 꺼냈다. 이어서 솜인지 실 뭉치인지 하는 것을 떼어서 돌조각과 함께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는 자루가 달린 쇠붙이를 잡더니 그것을 돌조각에다 긁어댔다. 놀랍게도 불꽃이 반짝거리더니 몇 번 만에 바로 그 실 뭉치 같은 것에 옮아 붙어 연기를 피워 올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당장 집에 가서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차돌맹이야 길 가 아무 데서나 주워오면 되고 쇠붙이는 우리 집 부엌칼 부러진 것으로 대신하면 될 것이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짝, 하고 일어나는 불꽃을 낚아챌 수 있는…그 솜인지 실 뭉치인지 하는 것의 정체를 도통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양남이 할아버지한테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싶었으나 버릇없다 할까봐 말을 꺼내지도 못 하였다. 아니, 그 할아버지가 나에게 설명을 해주고 싶어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왜냐면 담배를 피우랴, 숨을 쉬랴, 일정 시간의 규칙을 지켜서 킁킁 소리를 내랴…그 조부님은 너무 바빠 보였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만만한 엄니한테 물어보았다. 마침 엄니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외할아버지도 옛적에 담배를 피울 때면 부싯돌로 불을 만들었다 했다. 그러니까 그 쇠붙이의 이름이 ‘부시’이고, 부시를 차돌조각에 마찰하여 일으킨 불꽃을 순간적으로 옮겨 붙이는 연료를 ‘부싯깃’이라 하였다. 엄니는 부싯깃 만드는 방법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랑께, 산에 가면 왜 수루취라고 하는 노물 안 있냐. 고놈을 캐다가 잘 몰린 담에, 두 손바닥으로 살살 비비면 잎사구 뿌시레기들은 다 날어가 뿔고…”

취나물 중에 수리취가 있는데 고놈을 캐다가 햇볕에 바싹 말린 다음에 손바닥으로 비비면 부스러기는 날아가고 실처럼 가느다란 잎줄기만 남는데 그것을 솜처럼 뭉쳐 쌈지에 넣고 다니면서 조금씩 떼어서 부싯깃으로 사용하였다, 이런 얘기다. 당장 부싯돌로 불을 만들어보려던 나는 실망했다. 무엇보다 부싯깃을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엄니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수루취 대신에 쑥으로도 했드란다.”

나는 당장 달려가서 문설주 위에 내걸린 광주리에서 마른 쑥을 꺼냈다. 고놈을 차돌조각과 함께 왼손바닥에 올려놓고 부러진 식칼조각으로 한참을 긁어대 봤지만 불이 붙기는커녕 손바닥에 물집만 생겼다. 나는 그 엉터리 ‘부시’며 ‘돌’ 따위를 팽개치고 ‘UN’ 상표가 그려진 성냥 통을 갖다가 단번에 불을 켰다. “요렇게 쉬운 걸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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