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시제알바, 들어보셨나요?

  • 입력 2015.11.29 01:41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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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음력 시월 보름을 전후한 즈음이면 집안마다 시제를 모십니다. 5대조 이상의 조상들께 후손들이 한꺼번에 제를 모시므로 명절 때도 못 만나는 먼 일가친척들이 모이는 날이기도 합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므로 알듯 말듯 한 얼굴들, 매번 물으면서도 해마다 몇 살인지를 또 묻는다든지 하면서 서로의 안부와 처지에 관심을 표하는 일상이 펼쳐집니다. 숲의 정령을 달래는 아일랜드 켈트족으로부터 유래된 할로윈축제보다 훨씬 값진 일인 듯합니다.

웃대 조상들께 제를 올리는 풍습이다 보니 엄숙하다 못해 무겁기까지 합니다. 참여한 이들도 어쩌다 아버지를 따라 온 젊은이들이 있을까 대부분 중년 이상의 어른들입니다. 제수를 장만하는 측도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도 몇몇이서만. 제를 모시는 이들도 남성이, 제를 모신 후 차기 회의를 위한 종중회의도 남성이, 여성은 오로지 제수 준비, 손님 접대의 일만 하게 됩니다.

조상님들께 정성을 다한 전통이 중년 이상의 어른들께로 집중되는 이 전통이 오래갈 수 있을지, 번창할지 셈이 복잡한 상황입니다.

시대가 달라져도 너무 달라져서는 조상을 섬기는 문화도 그러하거니와 일가친척들의 공동체성도 한참은 퇴색되었습니다.

명맥만 유지하는 고답적인 문화로는 생명력을 가질 수 없지 않겠나 싶습니다. 조상을 섬기는 고매한 정신은 살리되 시대에 걸맞게 형식의 변화는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엄숙함이 너무 강조된 나머지 경직된 제사 분위기로는 젊은이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없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남녀평등 문화가 대세인 만큼 제사나 종중회의 등도 개방적으로 운영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활성화 될지는 의문입니다만.

농촌지역의 수많은 문화가 여성농민들의 헌신으로 유지되듯 시제 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사람 모이는 곳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무급으로 무한정 제공하고 있으니 세상은 여성농민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셈이 빠른 사람들은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허드렛일을, 그 의미를 새겨가며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시제에서조차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아는 언니로부터 주말 알바를 해 보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시제하는 곳으로 음식을 나눠주고 청소해주는 간단한 일인데 농사일 보다 쉽고 일당이 세답니다. 그런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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