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을 저버린 장관이고 싶은가

  • 입력 2015.11.22 21:37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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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한 분의 농민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 평소 “농민이 편하게 농사지으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예순아홉의 농민이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의식불명인 채로 다섯째 날(18일 기준)을 힘겹게 보내고 있다.

지난 14일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육중한 차벽 위 경찰이 발사한 강한 수압의 물대포에 직사로 맞아 그대로 고꾸라진 것이다. 그날 이후 각계각층에서 농민 백남기씨의 쾌유를 비는 기자회견과 촛불문화제가 이어지고 있다. 가톨릭농민회의 일원이기도 한 그를 위해 천주교는 시국미사를 열고 “폭력진압 앞에 무릎 꿇고 지는 일 없게 해달라”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일처럼 나서야 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한 나라의 농업을 이끄는 농민들의 대표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이동필 장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의식불명의 백남기씨가 수술 직후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15일 이 장관의 SNS에는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 수상 마을을 방문하며 활짝 웃는 사진이 게시됐다. ‘희망찬 농업, 활기찬 농촌을 만들기 위해 우리 다시 한 번 힘을 냅시다!’라는 말과 함께.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인지상정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농민이 편하게 농사지으면서 살자”고 외치러 전남 보성에서 올라 온 농민이 불과 몇 시간 후 캡사이신, 최루액 가득한 서울 아스팔트 위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는데 장관은 바로 다음 날 ‘행복마을’에 가는 일이 시급을 다툴 만한 일정이었는가 말이다.

또, 본지 기자가 해당 SNS 게시글에 남긴 ‘농민이 사경을 헤매는데 이런 홍보가 적합하냐’는 댓글이 사라진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녕,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장관이고 싶은 것인가. 생사의 갈림길에 선 농민을 지척에 두고도 그 쉬운 발걸음 하기가 그리도 어렵단 말인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심장이 미어지는 슬픔 감내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 건네기가 그리도 어렵단 말인가.

장관이 방문한 ‘행복마을’의 주인이 누구인가. 함께 웃으며 있는 이들이 누구인가. 농민이다. 삶의 결은 다 다를지라도 장관이 직접 보듬어야 할 농민이다. 그러한 농민 중 한 분이 공권력의 폭력에 사경을 헤매고 있다. 당신의 품으로 보듬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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