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 입력 2015.11.22 01:05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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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바깥일을 보고서 집으로 들어서는 남편은 종종 “지하수 모터 안 껐지?” 또는 “비가 온다는데 비 설거지를 안 했지?”라며 묻습니다. 시어머니께서도 “건고추 바람 안 씌웠제?”라고 물으십니다. 기왕이면 지하수 모터는 잘 껐냐고, 건고추 바람은 씌웠냐고 물으면 더없이 좋을 것을 부정적으로 질문을 하는 것이지요. 고분고분하지 않는 나는 심부름에 대한 답은 뒤로하고 어찌하여 부정적으로 물으시냐고, 이 집 각시로 며느리로 사는 것 참 힘들겠네 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과오를 전제한 추궁식의 물음이나 잔소리는 사람을 위축시키고 주눅이 들게 합니다. 아마도 시어머니께서도 시할머니께서도 그러셨을 테지요. 어린나이에 시집와서 층층시하 시집살이에 격려와 지지보다는 미처 못 하고 놓친 일에 대하여, 또는 죽어라고 하기 싫은 일을 미루다가 꾸지람을 많이도 들으며 시집살이를 해내셨겠지요. 꾸지람 듣지 않으려고 지레 잘 하려다보니 ‘나’는 없고 온통 가족들이 먼저고 그 많은 농사일에 몸이 틀어지고 허리가 굽어진 것이겠지요. 그리고 몸에 밴 잔소리의 전통은 대물림됩니다. 그 잔소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판단이 선다면야 낫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고통이 되겠지요.

한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라는 책이 유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책이 유행할 때는 못 읽다가 한참 지난 후에 우연히 읽었습니다. 다 읽고서는 책 제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칭찬이 좋은 줄 모르는 이가 어디 있으며 어디 고래만 춤추게 하겠습니까? 지극히 당연한 말을 책 제목으로 내놨으니 책을 안 읽고도 책을 다 읽은 듯 느껴져 의외로 책을 읽는 이들이 적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나에게 책 제목을 달게 해줄 기회를 준다면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의 기술’ 정도? 책은 ‘칭찬이 중요하다’ 라고 말하기 보다는 언제 어떻게 칭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말하고 있고 더 자세하게는 잔소리는 사후 약방문이므로 감정을 드러내는 식으로 해대지 말라고 합니다. 잔소리의 목표가 행동의 변화라고 한다면 미리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며 실질적이라는 얘기를 덧붙이는 것이지요. 허나 우리네 퍽퍽한 삶에서는 잘 되지 않을 일에 대하여, 또는 마음상한 일에 대하여 만만한 이에게 감정을 표하거나 잔소리를 먼저 합니다. 가까운 이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살짝 상실한 채 말이지요.

가족끼리 또는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공존과 의존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으니 섞여 사는 사람들 간의 애정과 신뢰야 기본인 셈이죠. 거기에다 조금씩의 발전을 위한 각자의 의견표출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니 일을 그르친 후에 비난하는 식의 잔소리보다는 일의 중요성에 대하여 사전에 기분 좋게 설명하는 능력이 필요하겠지요. 아무리 중요성을 말했어도 놓쳤다면 실수인지 아니면 의도인지를 구분해서 접근해야할 것입니다. 실수라면 실수를 보완해주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고, 의도라고 하면 생각을 나누고 또 나누어서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다짜고짜 했냐? 안 했냐? 따져 묻는 잔소리 방식은 친밀함을 해칩니다. 뭐 꼭 아내에게나 며느리에게 하는 말뿐만 아닙니다. 상대가 누구든지 존중의 의미를 상실한 잔소리 방식은 환영받지 못할 일입니다.

대신 가벼운 언급이면 좋겠습니다. 볕이 이리 좋은데 고추를 말렸나 어쨌나? 볕이 참 아깝다 라든지, 바쁜 우리각시 비설거지로 더 바쁘게 비는 왜 이리 잦나? 라고 조금은 떨어진 거리에서 언급하는 형태로 말입니다.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으니 나머지는 나의 몫이 되겠지요? 잔소리나 꾸지람보다 상대를 움직이게 할 단 한마디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능력입니다. 만추에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으로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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