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농민들의 ‘신문고’

사진이야기 農‧寫

  • 입력 2015.11.15 17:44
  • 수정 2015.11.15 17:48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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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현수막이 풍년이다. ‘쌀값이 개사료보다 싸다니’ ‘분노의 나락’ ‘쌀을 국정화하라’ 등등 2015년 동 시대를 힘겹게 버텨내는 이 땅 농심(農心)의 분노가 현수막 문구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겼다. 120년 전 동학농민혁명 전봉준 장군의 매서운 눈초리가 삽화로 살고 ‘쌀값은 농민값’이라는 명백한 진리가 일필휘지의 붓글씨로 새겨졌다.

각 시‧군청 앞에 쌓인 나락 위에, 볏짚더미만 덩그러니 남은 쓸쓸한 풍경 너머에, 사람들이 모이고 떠나는 읍면 교차로마다 가지각색의 현수막이 게시되고 나부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시시때때로 트럭을 운행하는 농민들은 아예 ‘지어먹을게 없다 생산비 보장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적재함에 매달아 온 동네를 누빈다.

결국엔 ‘못살겠다 갈아엎자.’ 14일 전국농민대회로, 민중총궐기로 반농정권 심판 위해 서울로 가자, 하여 지난 주말 서울 남대문 옆 태평로엔 수만의 농민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논밭을 비우고 축사와 하우스로 향하는 손길을 거둔 채 상경했다. 현수막이 미처 담지 못한 비통한 심정을 때로는 육두문자로, 때로는 주먹 치켜 올리는 구호로, 때로는 종이컵 가득 따른 소주 한 잔에 담아 쏟아내고 또 쏟았다.

전국의 농민들이 내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싣는다. 읍면소재지에서 혹은 지방도로 갓길에서 마주치는 현수막은 2015년 역행하는 시대에 몸부림치는 농민들의 신문고와 다름없다. 이 생생하고도 생경한 슬픔과 분노, 이에 깃든 기발한 풍자를 곱씹어보라. 농민도 국민이다. 농민도 같이 살자.

일부 사진은 각 지역농민회에서 제공 받았음을 미리 밝힌다. 거리에 있는 더 많은 삶의 이야기들, 지면에 모두 싣지 못함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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