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43회

  • 입력 2015.11.15 13:06
  • 수정 2015.11.15 13:10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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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 새야 유신새야 푸른 창공 높이 날아 조국통일 이룩하고 자주통일 달성하자/새야 새야 유신새야 너도나도 잘 살자는 유신헌법 고수하여 국력배양 이룩하자/유신유신 우리 유신 우리 살림 오직 유신 유신체제 반대하면 붉은 마수 밀려온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에 가사를 바꾼 노래는 들을수록 입에 붙어서 선택은 저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학교에서도 금세 아이들에게 가르쳐서 아이들이 하교하며 마을이 떠나가게 합창을 하기도 했다. 면 단위, 읍 단위에서 열리는 반공궐기대회며 유신찬성대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하다보니 그 해 겨울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 일러스트 박홍규

투표를 열흘쯤 앞두고 열린 회의에서 선택은 십만 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주민들에게 투표에서 찬성을 유도하며 쓰라는 돈이었다. 그 돈이면 투표권이 있는 주민들 전부를 데려다가 짜장면을 먹일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선택은 면장과 상의하여 일단 고무신 백 켤레를 샀다. 그리고 각 마을의 책임자에게 대여섯 켤레씩 나누어 주었다. 현금으로도 삼천 원씩을 분배했다. 막걸리 한 되에 오십 원이니까 그 돈이면 어느 마을에서든 코가 비뚤어지게 술잔치를 벌일 수 있었다. 물론 대통령이 하사한 것이라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잘 알리고 무조건 찬성표를 눌러야 한다고 다짐을 두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고도 삼만 원 턱이 남았다.

“그거야 뭐 정주사가 알아서 하면 되지. 표 써 붙인 돈도 아니고, 또 정주사도 떨어지는 게 있어야 할 거 아유?”

면장은 진즉 그만둔 농협 직함으로 선택을 부르며 대놓고 그냥 주머니에 넣으라는 투였다.

“그럴 수야 있습니까? 국가 대사에 쓰라고 내려온 돈인데 내가 어찌 손을 댑니까.”

정색하며 분연히 선택이 말하자 면장이 한다는 소리가 또 선택의 심기를 건드렸다.

“혼자 쓰기가 거시기하면 우리 수고한 사람들끼리 읍내가서 삐루나 한 잔씩 헙시다. 요새 새로 나온 독일맥주라는 게 맛이 좋더만.”

“이보씨요, 면장님. 주민들한테 막걸리 마시라고 해놓고 우리는 맥주를 마시면 되겄습니까? 소문이라도 나면 우리 욕먹는 건 고사하고 이번 투표에도 악영향을 주지 않겄습니까? 지금 하신 말씀은 안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결국 선택이 찾은 방법은 학교 아이들에게 호빵 두 개씩을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그 전 해에 나온 호빵이라는 찐빵은 시골 아이들에게 감히 맛보기 어려운 대단한 음식이었다. 면내에 있는 가게에는 아예 파는 곳이 없어서 선택은 일부러 읍내에 가서 특별히 주문을 했다. 한 개에 이십 원인 호빵 천사백 개는 투표 이틀 전에야 겨우 도착했다. 학교 교장과는 진즉에 이야기가 되었다.

“아이고,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투표권 가진 부모들이야 애들 챙겨주는 걸 제일로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께서 내려주신 거라고 하면 애들도 좋아하고 집에 가서 이야기를 할 테니 그보다 더 좋은 선거운동이 없지요.”

교장도 선택 못지않게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저마다 호빵 두 개씩을 집으로 가져가서 쪄먹은 일은 선거가 끝나고도 한동안 면내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선거 당일에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투표를 독려하였고 산동면에서는 굴신을 못하는 노인들을 대신해서 투표하는 방식으로 거의 전원이 투표를 하였다. 주소만 두고 집을 나간 몇몇을 빼면 100% 투표였다. 그런데 나중에 나온 투표 결과는 선택을 놀라게 했다. 산동면 투표 결과 무려 20%가 넘는 반대표가 나왔던 것이다. 무슨 일에든 외눈을 뜨고 보는 종자들이 더러 있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대체 어떤 늠덜이 이렇게 반대표를 던진 것이여?”

“괜히 비밀투표니 뭐니 해서 누가 그렇게 했는지 알 수가 있나? 뭔 말러비틀어진 비밀투표여, 젠장.”

사무실에 모인 다른 사람들도 한 마디씩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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