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한국의 당당한 여성농민으로!

  • 입력 2015.11.15 11:27
  • 수정 2015.11.15 11:28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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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일전에 농민단체 행사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역시나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음식이 있고 음식이 있는 데에는 여성들이 있는 법, 천막아래서 술을 드시며 손님접대를 하는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옹기종기 모여 떡이며 과일, 잘 삶긴 고기를 보기 좋게 담느라고 분주했습니다. 집에서와 똑같이 행사음식을 담당하는 사람이 꼭 여성이라는 것에 불만스러워도 현실이 그러하기도 하거니와 또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일을 나누고자 손을 보태러 갔습니다. 처음 보는 분들이 음식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어서 다가가서 인사를 하려는데 자세히 보니 이주여성농민이었습니다. 우리말이 온전하지는 않았지만 손놀림과 자세는 전형적인 우리네 여성농민이었습니다. 언제 우리문화를 벌써 익혔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또 미안함도 있었습니다.

2014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결혼한 농림어업 종사자 결혼남성은 4,726명, 여기서 외국인 여성은 877명입니다. 20%가 넘는 숫자이지요. 국제화시대에 글로벌하게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복잡한 사정이 달라진 것이 없으니 심경은 더 복잡할 수밖에요. 글로벌하게 외국출장을 다니고, 일년에 한 번 이상은 해외로 나들이 가는 것, 자녀들이 예사로 어학연수를 간다거나 유학을 가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국제결혼만큼은 여전히 기피하고픈 것이 현실입니다. 생각보다 차이가 큰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개인의 힘으로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농촌의 어려움과 주위의 차가운 시선마저 감당해내야 하나니 그런 시련이 다시없는 것이지요.

결혼을 하는 남성도 경제적 부담과 심리적 위축의 어려움이 있고, 평생을 농사지으며 열심히 산 대가로 외국인 여성을 며느리로 맞이하는 농촌 어르신들의 당황스러움 또한 마찬가지이며 무엇보다 낯설고 물선 곳에서 그 많은 부담을 떠안고 살아가야할 이주여성농민의 처지야 두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 모두가 한국농업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것이지요. 동남아시아 여느 국가보다 경제가 발전했다하니 한국에 가서 사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싶어 왔을 것입니다. 허나 한국의 여성농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꿈꾸던 삶과 얼마나 다른지는 차마 몰랐을 것입니다.

본디 사람은 생활의 곤란함으로 인한 날선 감정이 약자에게로 향하는 법, 남편과 시댁어른들의 구박 아닌 구박에 결혼생활이 몹시 곤란할 것입니다. 게다가 여성이 생활의 많은 것을 감당해야하는 우리네 야릇한 농촌문화까지 겹쳐서 쉽게 적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결혼한 여성들이 훌쩍 떠나는 이가 많다지요? 사람들은 그녀들의 뒤통수에다 뭐라고 말을 해댄다만 사실 살아남는 것이 떠나는 것 보다 더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농민들도 다 떠나고 노인들만 지키는 농촌을 당신들이 뭐하려고 굳이 지키겠습니까?

유럽 국가들의 수준 높은 삶도 알고 보면 수백년에 걸쳐 다른 대륙을 침략한 대가라고들 합디다. 우리나라의 경제력도 온전히 우리나라 자체의 성과이겠습니까? 다른 나라의 값싼 원료를 가공해서 수출한 성과이니, 값싼 원료생산의 주역인 동남아국가의 경제후진은 어찌 보면 우리의 부담도 있는 셈입니다. 세상은 글로벌하게 돌아가는데 생각은 선진과 후진이 뒤죽박죽 섞여서 복잡합니다.

그래도 남편과 농민단체 행사에 나오는 이들은 보기가 좋습니다. 시간과 보람을 같이 나누려는 것이니까요. 지난번 행사장에서 만난 그녀는 우리집 보다 마늘을 많이 심었습니다. 일손이 많이 필요할 때는 그쪽 친구들 10여명 이상씩을 동원한다 합니다. 하고보니 그녀는 우리네 농촌의 안주인 같은 느낌을 물씬 풍겼습니다. 인심 좋고 손 크며 챙길 사람 다 챙기는 전형적인 여성농민의 모습 말입니다. 굳이 연민할 이유도 없습니다. 기울어가는 우리 농업을 떠받쳐 내는데 고맙고 또 고맙지요. 그렇게 하세요. 열심히 일하고 큰소리도 치며 생명을 키우는 한국의 당당한 여성농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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