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매출에도 손에 쥔 게 없다”…농정실패 여실히 드러나

제주에서도, 아이 손 맞잡고도, ‘가자! 서울로!’

  • 입력 2015.11.14 22:30
  • 수정 2015.11.14 23:31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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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14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선 가뭄에 자식처럼 기른 벼가 타들어간 농민부터 매출은 억대를 올렸지만 해마다 오르는 인건비와 농약값에 빈 손만 남은 농민까지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밥쌀용쌀마저 수입하는 정부의 농정실패가 여실히 드러난 대회였다.

대회장 곳곳서 밥쌀용쌀 수입 개탄 봇물

충남 당진시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학상씨(고대면, 56)는 논 6,000여평이 가뭄으로 인한 염해피해를 입었다. 농협 RPC도 가뭄피해를 입은 그의 논에서 수확한 벼를 수매하지 않아 벼 120톤을 고스란히 창고에 쌓은 채 이번 대회에 참여했다. 김씨는 “피해보지 않은 벼까지 품질이 안좋다고 해서 팔지를 못했다”며 “지난 7월 면사무소에 가뭄 피해를 신고했는데 내게 연락도 없이 면사무소 직원이 한 번 다녀간 뒤로 연락이 없다”고 애를 태웠다. 그는 “고추도 1근에 5,000원에도 사가지 않는다”라며 “정부에서 수입만 자꾸 하고 막막하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 한 농민이 14일 밥쌀 수입을 반대하는 선전물을 들고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충남 서천군에서 논 5,000평을 농사짓는 양성수(기산면, 47)씨는 다행히 금강물을 받아 가뭄피해를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농협의 벼 우선매입금이 지난해 대비 1포대(40㎏)당 7,000원이나 내려 지역농민들의 걱정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6년전 귀농했다는 양씨는 “서천지역은 전체 농가의 80%가 논 농사를 짓는데 수매가가 내려가 타격이 크다”면서 “쌀이 남는다는데 밥쌀용 수입쌀이 들어오니 걱정이다”고 말했다.

정부는 논을 줄이고 대신 시설재배를 권장하려 한다. 언론매체들도 앞다퉈 시설재배로 고소득을 올리는 이른바 억대 농부를 소개하지만 농촌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충북 진천에서 수박과 오이 등을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유신희씨(초평면, 55)는 “하우스 20동에서 농사를 지으며 매출은 1억원 대지만 나가는 돈이 8,000만원이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유씨는 “하우스 20동을 혼자 농사지을 수 없으니 사람을 써야 하는데 1명당 하루일당이 10만원이다. 농약값도 많이 들어간다”라며 “억대면 뭐하나. 남는 게 없다”고 탄식했다.

논산 상월면 농민들 풍물공연 준비 
“전국 농민들에게 위안되고 싶었다”

품목을 가리지 않고 무너지는 농산물 가격에 메말라 간 농민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다시 희망을 쌓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이번 대회엔 제주도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80여명의 농민들이 참석했다. 콩농사를 짓는다는 추미숙씨(안덕면, 53)는 “새벽 5시에 나와 각자 시간대별로 비행기를 나눠 타고 서울에 왔다”고 얘기했다. 추씨는 “제주도도 감귤값과 콩값이 폭락해 다들 걱정이다”라면서 “오늘 대회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오려고 지역별로 회의를 돌아가며 열면서 전국대회를 홍보했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대회에 참가한 농민들도 있었다. 충북 청주시 미원면 농민들은 10여명의 아이들과 함께 상경했다. 어른들과 함께 온 아이들의 손엔 직접 만든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와 우리 쌀을 지키자는 호소가 담긴 피켓이 쥐어져 있었다.

▲ 충북 청주시 미원면에서 온 정애경씨(사진 오른쪽)는 세 딸들과 함께 대회에 참가했다. 미원면에서 온 아이들이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와 우리 쌀을 지키자는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세 딸들과 함께 온 정애경씨(미원면, 50)는 “아이들이 우리 농업의 미래라 생각해 어른들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왔다”며 “미원면에서만 버스 5대가 왔다”고 귀띔했다. 유기농 배추와 토마토 농사를 짓는다는 정씨는 “아이들이 시골에 살면서 주말엔 틈틈이 농사일을 돕는다. 이 대회에 오면 농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현실을 알게 되니 함께 왔다”며 “농사를 자식들이 이어받으면 좋겠지만 자신은 없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농민들끼리 서로 타드는 농심을 달래기도 했다. 충남 논산시 상월면 주민들은 농민대회를 앞두고 풍물단을 만들어 공연을 준비했다. 상쇠를 맡은 문승호씨(상월면 61)는 “나도 벼농사를 짓는다”면서 “농민대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전국의 농민들에게 위안이 되는 풍물공연을 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20명으로 구성된 상월면 풍물단은 대회 내내 대열 사이를 오가며 풍물장단을 전국에서 모인 농민들에게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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