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터값만 갚다가 인생이 끝날 판”

르포 전북지역서 확인한 낙농업의 위기

  • 입력 2015.11.08 21:28
  • 수정 2015.11.08 21:29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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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군산에서 젖소 170여두를 키우는 양영식씨가 지난 4일 조사료로 먹일 라이그라스를 재배하기 위해 비료 살포 작업을 하고 있다. 양씨는 "이렇게라도 해야 생산비를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이른 새벽 정성을 들인 젖소로부터 원유를 짜내는 일로 하루가 시작되고 늦은 오후 다시 소젖을 짜는 일로 하루가 마무리된다. 낙농가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이 모습이 달라졌다. 우유를 짜내는 일에만 집중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과잉생산을 이유로 수급조절까지 신경 쓰게 된 것이다. 게다가 쌓여만 가는 빚더미를 보며 낙농가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난 4일 전북 군산시 서수면의 목장에서 만난 양영식(39)씨는 “근본적으로 우유수급 문제가 가장 큰 고충”이라며 “낙농에만 주력해서 젖만 짜야 하는데 우유수급까지 신경 써야 되니 어렵다”고 토로했다. 낙농진흥회 집유 농가인 양씨는 연간총량제를 한시적으로 유보한 낙농진흥회의 최근 결정에 “농림축산식품부와 낙농진흥회가 어렵다고 하니 낙농가가 크게 양보한 것”이라며 “밀어붙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낙농가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씨는 무엇보다 “낙농진흥회 농가가 총알받이로 느껴진다. 생산량의 18%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수급을 조절할 수 있겠냐. 집유주체별 다른 환경에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전국단위쿼터제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군데로 뭉쳐 일괄 감축하면 평등성이 생겨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른 새벽 착유를 마치고 나온 양씨와 함께 자리를 한건 옆마을 임피면에서 목장을 하고 있는 장선수씨(33)다. 장씨는 “낙농진흥회 농가 2세 낙농인들은 쿼터값만 갚다가 인생이 끝날 판”이라며 암울한 미래에 대한 헛웃음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양씨는 2톤300~400kg의 쿼터를 보유하고 있고 4천평의 대지에서 젖소 170마리를 키우고 있다. 쿼터가격만 15억원에 달한다. 목장시설비 20억원에 벌크통 등 사료자동화라인 3억원 등을 합치면 4~50억원 규모의 농장이다. 규모만 놓고 보면 어마어마한 대농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쿼터값을 포함을 부채가 수십억원이라는 게 양씨의 설명이다. 양씨는 “쿼터가 1리터에 52만원씩하는데 쿼터제만 없었으면 그 꼴로 농가부채가 늘어날 일이 없다”라며 한숨을 내셨다.

50마리의 착유소가 1년에 50마리를 낳고 암수를 나눠 그중 절반인 25마리를 암소라고 가정하고 보조소까지 포함하면 기존 착유소 50마리에 1년에 15마리 이상이 증가된다. 2~3년 만에 착유소가 두, 세배도 될 수 있다. 착유소가 늘어나니 우유를 안 짤 수 없고, 빚을 내 쿼터를 또 구입하게 되니 빚의 악순환 속에 목장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앞서 3일 전북 고창군 상하면에서 만난 황승수씨(52세)가 설명한 낙농가가 빚에 허덕이게 되는 이유다.

▲ 전북 고창에서 젖소를 키우는 황승수씨가 지난 3일 소젖을 짜는 자동착유기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장씨는 “소5마리 키우면 아들 4~5명을 학교 보내고 장가까지 다 보낸다고 하는데 이렇게 키웠는데 빚속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며 “빚에 허덕이고 빚에 빠져죽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낙농가가 처한 현실을 되짚었다.

장 씨는 “지금 이대로면 낙농가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라며 “낙농후계자가 제대로 양성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하고, 어떤 규제와 행정이든 낙농가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전국단위쿼터제를 도입해야 하지만 웬만하면 빠른 시일 안에 폐지돼야 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현재 유업체인 빙그레에 납유하고 있는 황씨는 “1997년 IMF사태 이후 사료비 폭등에 소비 부진으로 발생한 우유파동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1998년 당시 900kg 원유를 생산하던 황씨는 2년 전 560kg으로 생산량을 줄였고, 키우던 젖소 35마리 중 10마리를 도태시켰다. 너도나도 젖소를 도태시키는 상황이 되다 보니 300만원이던 소값은 7~8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황씨는 쿼터기준량이 처음 정해졌던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설명했다.

황씨는 낙농가 위기와 관련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낙능을 게속 하려면 큰 틀의 원칙과 규정을 마련해야 하는데 낙농가 이해관계가 다르니 쉽지 않다”며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정권과 정치권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제대로 된 정책을 내와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소는 낮에도 한번씩 둘러봐야한다. 밥도 한 번씩 썰어주고 발정난 놈 있는지도 보고 밥 먹다가 목이 걸려서 못 일어난 소는 없지 늘 소 상태를 살핀다”는 황씨. 황씨는 “낙농가도 문제지만 쌀이나 다른 특작물 농가도 거덜나게 생겼다”며 “정치하는 사람들이 어찌할라 그러는지 앞이 안 보인다”며 낙농가만이 아니라 농업 전체에 드리운 암담함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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