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생산감축’으로 몰고 갈건가

  • 입력 2015.11.08 12:50
  • 수정 2015.11.08 13:04
  • 기자명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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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선민 기자]

원유생산이 과잉될 때마다 낙농진흥회는 생산량 감축 카드를 꺼내고 있다. 4개월 동안 결론이 나지 않던 원유감축안이 지난달 31일 타결됐지만, 낙농가들은 매번 감축 논의가 불거질 때마다 낙농가들의 희생만 강요하는 대책이 억울하단 입장이다.
원유 부족 시 유업체가 버퍼쿼터를 남발한 데엔 면죄부를 주고, 원유 과잉 시 원유 감축의 책임은 모두가 떠안는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낙농진흥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원유과잉 ‘감산’ 요구 … 형평성 지적

▲ 낙농진흥회가 지난달 29일 제5차 임시 이사회를 열고 ‘원유생산 추가감축안’을 논의하고 있다. 낙농진흥회 제공

지난해 원유과잉 대란이 일어나면서 낙농진흥회가 꺼내든 카드는 ‘생산량 감축’이었다. 원유과잉 상황에서 ‘감축’은 가장 확실하고 빠른 해결법이기 때문이다.

낙농진흥회는 원유 생산 감축을 위해 지난해 11월 ▲잉여원유가격 리터당 100원유지 ▲정상원유가 지불정지선 3.47% 하향조정 ▲초과원유가격 인하기간 연장 등의 내용을 담은 원유생산 감축안을 의결한 바 있다. 이에 낙농가들은 감축안에 대해 즉각 반발했다. 원유생산이 과잉될 때마다 수급 조절은 매번 낙농가의 희생으로 이뤄지는 데 대해 농가들이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이어 낙농진흥회는 농가와 함께 지난 3월 추가적으로 착유우 도태도 시행했다. 농가 희생만 진행되는 형국이 반복된 셈이다.

농가와 집유업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유과잉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낙농진흥회는 지난 9월 ▲정상원유가격 지불정지선 확대적용 ▲연간총량제 패널티제도 도입 ▲쿼터 인수도 시 귀속률 상향 등을 내용으로 하는 추가 감축안을 내놓았지만 농가들의 반대에 부딪쳐 감축안 통과는 불발됐다.

농가들이 감축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형평성 때문이다. 원유 부족 시엔 ‘버퍼쿼터’를 운영해 원유량을 증산해 온 민간 유업체완 달리, 감산 시에는 진흥회가 선도적으로 감산을 떠안아야 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지 않느냔 지적이다.

버퍼쿼터는 정해진 쿼터 외의 추가 쿼터로, 일반 유업체들만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2011년 구제역으로 원유 공급량이 부족해지면서, 유업체들은 이 버퍼쿼터를 자율적으로 사용해 증산해왔다. 버퍼쿼터만 없애도 상당량 감산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연간총량제나 정상원유가격지불정지선 확대 등은 기존쿼터물량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버퍼쿼터는 해당사항이 없다.

그러나 낙농진흥회는 소속 농가들에 우선적으로 원유 생산량을 줄이도록 종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4개월 넘게 진통을 겪은 감축안 논의는 결국 지난달 말 끝이 났다. 연간총량제를 한시적으로 중단하고, 쿼터 초과물량 리터당 100원을 부과하는 대신 올해 말까지만 정상원유가 지불정지선을 3.47%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감축안은 여전히 잉여원유 처리에만 초점을 맞춰 근본적인 수급조절 대책은 될 수 없다. 원유 과잉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없는 탓에 공급 과잉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농가의 희생이 되풀이될 것이란 우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컨트롤 타워 부재한 ‘구조’의 문제

농가의 희생이 반복되는 이 상황은 결국 현재의 원유 공급 구조에서 기인한다. 낙농진흥회가 전국적인 원유 수급조절에 실패하면서 집유 구조가 다원화됐고, 그 결과 집유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유업체의 자율성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먼저 현재 집유 경로는 4가지로 분류된다. ▲유업체가 낙농진흥회를 통해 원유를 사는 경우 ▲유업체가 농가에서 직접 원유를 사는 경우 ▲유업체가 직거래 조합에서 원유를 사는 경우 ▲서울우유 등의 유가공조합이 독자적으로 집유하는 경우다(<그림>참조).

유업체가 3가지 경로로 원유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되면서, 유업체는 독자적으로 원유 물량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유업체는 원유 생산 과잉에 따라 재고가 넘치는 상황에 처하면, 재고를 줄이기 위해서 낙농가와 직거래한 물량을 우선으로 소진하게 된다는 점이다. 원유공급이 과잉될 때마다 진흥회와 유업체간 계약물량은 필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 원유수급 구조에서는 진흥회가 원유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진흥회 소속 낙농가에만 생산 감축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낙농진흥회의 원유공급현황을 살펴봤을 때 공급안정 시기로 평가하는 2010년 기준 집유량은 1,418.3톤, 유업체로의 공급량은 1,306.5톤, 잉여율은 7.9%다. 반면, 2015년 평균 집유량은 1,416.5톤으로 2010년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공급량은 1,218.4톤으로 줄어들어 잉여율이 14%에 이르렀다.

농가 생산량은 큰 변화 없었지만 유업체와 계약량만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여율을 낮추기 위해 농가에게 감산 책임을 떠맡기고 있는 셈이다.

생산량 감축 방안이 원유수급조절예산 조정이 아닌 감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문제가 된다. 이번 공급과잉 사태에도 낙농업계는 2002년과 같이 1,300억원 정도의 원유수급조절자금을 투입해 현재의 원유수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약물량 감소를 생산 감축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공급과잉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낙농정책에 낙농가들의 불만과 불안은 커져가고 있다. 또 원유 수급조절의 컨트롤타워로서 기능을 잃어버린 진흥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원유공급과잉을 해결하기 위해선 구조 개혁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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