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진흥회는 왜 수급불균형을 해결하지 못하나?

‘임의가입’ 법 조항, 태생적 한계 안은 진흥회
원유과잉 수급조절 못해 … 집유일원화 실패 자초

  • 입력 2015.11.08 12:45
  • 수정 2015.11.08 13:03
  • 기자명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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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선민 기자]

원유수급불균형 문제는 낙농업이 시작된 이래 반복해오고 있다. 특히 원유과잉이 심각해짐에 따라 낙농업계 전반엔 효율적인 수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왔다. 이에 원유수급불균형을 해결하고자 출범한 낙농민간전문기구가 낙농진흥회다.

낙농진흥회는 산발적인 집유체계를 ‘일원화’해 전국 단위의 계획생산제를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출범했지만, 결과적으로 목표달성에 실패했다. 태생적으로 집유일원화가 불가능한 법적 한계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낙농진흥회가 출범하기 전 당시 낙농업계는 업체 간 중복되는 집유체계로 인해 원유 집유 혼란이 가중됐다. 당시 원유를 집유하는 주체가 61개소에 이르렀고, 우유가공공장 49개소가 각각 자율적인 집유와 원유검사를 실시해 원유 집유 체제가 산만했다. 이에 농가, 학계, 업계 등 낙농업계 전반에서 효율적인 원유수급조절을 위해 집유일원화가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왔다.

낙농업계의 절실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정부는 1996년 낙농제도개선위원회를 설치하고 ‘낙농종합발전대책’을 확정했다. 현 개정 낙농진흥법의 모태다. 대책은 ▲원유집유제도 개선 ▲우유수급 및 가격조절기능 강화 ▲낙농민간전문기구(현 낙농진흥회) 설치 및 운영 등이 핵심내용이다. 정부는 종합대책을 토대로 낙농진흥법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개정안 통과는 쉽지 않았다. 개정단계에서 가장 쟁점으로 대두된 것은 제5조 진흥회의 구성, 집유일원화 가입과 탈퇴에 관한 조항이었다. 애초 정부의 개정안은 ‘진흥회는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 및 대통령령이 정하는 낙농관련단체로 구성한다’고 설정해 의무가입을 종용했으나, 이 ‘강제참여조항’에 대한 충남 지역 농가의 반발이 심했던 것이다.

결국 집유일원화 강제조항은 ‘임의참여 형태’로 수정됐다. 낙농진흥법은 3년여간 답보상태를 공전하다 제5조 조항을 ‘진흥회 구성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로 구성한다’로 변경한 후 1999년 개정됐다.

이는 각 주체별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낙농진흥회 가입과 탈퇴를 임의로 하도록 만든 셈이다. 때문에 진흥회가 원유의 수급조절에 있어서 권한이나 장치를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전국적인 낙농정책의 효율적인 수립이나 시행에 차질을 빚게 됐다. 낙농진흥회가 집유일원화에 실패한 태생적 한계를 갖게 된 배경이다.

이러한 한계점을 갖고 출범한 낙농진흥회는 1999년 출범 직후 애초의 설립목적대로 집유일원화를 실시했다. 집유일원화 참여율은 2001년 말 기준 유업체 21개, 낙농조합 30개 등이 참여해 최고 65%에 달했다.

집유일원화의 실현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수급 안정을 원하는 농가들의 기대심리 또한 높아졌다. 이는 원유 증산으로 드러났고, 2002년 전국원유생산량은 253만톤으로 사상 최대치에 이르렀다. 낙농진흥회의 수급조절 역할을 증명해야할 상황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낙농진흥회는 수급조절에 실패했다. 낙농진흥회는 남아도는 잉여원유에 대한 수급조절이 어려워지자 잉여원유차등가격제를 실시했다. 잉여원유차등가격제는 수요가 있는 원유와 없는 원유에 지불가격을 차등화하는 제도로, 당시 잉여원유 1리터당 200원의 유대를 지불해 농가들의 감산을 유도한 것이다. 농가들은 원유가인하 수용불가 입장을 강경하게 내비쳤지만, 낙농진흥회는 아랑곳 않고 강행했다.

결국 서울우유협동조합이 낙농진흥회 탈퇴를 선언했다. 서울우유의 탈퇴로 낙농진흥회의 원유 점유율은 37.4%로 반토막이 났다. 이어 부산경남우유조합과 제주낙협이 추가로 탈퇴하면서 참여율은 28%로 급격하게 낮아졌다. 집유체계는 분산되고, 집유일원화는 실패로 돌아갔다.

농가를 고려하지 않고 잉여물량 처리에만 골몰한 낙농진흥회의 수급방안도 문제였지만, 결국 ‘임의가입’ 조항이 집유일원화 실패에 불을 지핀 셈이다.

집유일원화는 2004년 정부의 집유체제 직결 전환 발표를 계기로 결국 좌초됐다. 이후 수급안정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낙농제도 개편 논의도 결론을 맺지 못한 채 농가는 수급불균형으로 인한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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