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토종씨앗] 아홉갈래로 갈라지니, 구조내기 대파라네

  • 입력 2015.11.07 11:44
  • 기자명 홍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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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내기 대파 씨앗

▲ 홍경희(전남 영광군 묘량면)
올해도 우리 집 앞 은행나무에 은행이 ‘아그대 다그대’ 많이 열렸다. 이 은행나무 한 그루에서 얻은 것으로 양가 형제자매들이 다 나눌 정도로 풍성하게 열린다. 남편과 은행을 씻으며 이 나무가 우리 집에 온 사연을 되새기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20년 전 함께 농사짓던 분께 보증 서줘 옴팍 뒤집어썼는데 그 분이 미안하다며 주고 간 게 이 은행나무다. 우리 부부는 이 은행나무가 수천만 원짜리라고 웃으면서 얘길 하곤 한다.

그런데 우리 텃밭엔 이 은행나무보다 더 사연이 깊은 토종씨앗이 한 가지 있다. 구조내기 대파 혹은 구족파라고 한다. 뿌리 번식이 잘 되어 한해에 아홉 갈래 이상 새끼를 잘 친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IMF가 터졌던 해에 이 대파를 수십 마지기 지었는데 값이 폭락하여 갈아엎었다. 우리에게 농사를 가르쳐 주셨던 선배님께서 좋은 대파종자라며 소개해 주셨고, 전년도에 대파시세가 좋아 잘 될 거라 기대하며 심었다. 그런데 웬걸 농사는 그림처럼 잘 지었는데 값이 폭락해서 수확 작업비도 나오지 않았다. 5톤 차 3대 분량을 작업해서 공판장에 내니 각각 80만원, 38만원, 32만원이라 한다. 그래도 혹시나 값이 더 나아질까 기대하며 더 뽑아 철끈으로 단을 묶어 밭 바닥에 놔두고 기다렸는데, 점점 더 떨어졌다. 나중에 광주에서 다니러 오신 시아버님과 남편이 철사끈을 펜치로 일일이 끊어야 했고, 나머지는 트랙터로 갈아엎었다. 그걸 보며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대파 종자를 전해주셨던 선배님께서 당장 애들과 먹고 살 일이 막막할 텐데 어떡하냐 걱정하시며 농사에 들어간 비용의 일부를 그냥 현금으로 주셨다.

시아버님께서 아들, 며느리의 수심이 어찌나 짠하게 느껴졌던지 갈아엎었던 대파를 가져다가 당신의 텃밭 한 켠에 심으셨다. 시부모님께서 그 해부터 매년 씨앗을 받아 이웃과 나누셨고, 우리에게도 가슴 아프지만 맛도 좋고 새끼 잘치고 잘 자라니 키워보라며 씨앗을 주셨다. 쓰라린 우리 집 농사의 역사가 이 씨앗 속에 있지만, 시부모님과 선배님의 사랑도 고스란히 담겨있어 우리부부에겐 보석처럼 귀한 씨앗이다. 지금은 웃으며 종자를 나눈다.

둥글고 풍성한 꽃대가 올라오면 텃밭은 예쁜 꽃밭으로 변해 벌 나비가 날아든다. 꽃대가 지고 오뉴월 새 순이 올라올 때 제일 맛있다. 새 순을 먹기 좋게 썰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조선장, 고춧가루, 깨, 참기름 양념장 넣고 나물로 무쳐 놓으면 앉은 자리에서 밥을 한 양푼 먹을 정도로 맛이 기가 막히게 좋다.

4월에 씨앗을 육묘상자에 심어 오뉴월에 심기도 하지만 이 대파는 한 번 심으면 계속 그 자리에서 새끼를 치니 땅을 일궈 새롭게 심지 않아도 된다. 밑 부분을 자르면 새순이 나오며 새끼를 친다. 그리고 사시사철 살아 있으니 참 알뜰하고 고마운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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