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품앗이, 사람살이의 정수

  • 입력 2015.11.07 11:38
  • 수정 2015.11.07 11:39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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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우리 마을에는 아직 품앗이의 전통이 남아있습니다. 웬만한 농사일은 각자가 자기 일을 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일손이 필요한 일을 할 때면 서로 힘을 보태야 해서요. 일 년에 두 번, 마늘을 심을 때와 그 마늘이 자라나서 비닐멀칭을 할 때입니다. 평소에는 각자가 자기일 하느라 제대로 이야기도 못 나누지만 품앗이 하는 날은 한나절 이상씩을 함께 하다 보니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며, 궁금한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의 밀도가 높아집니다. 누가 마늘을 먹는 법을 알아내서 우리가 이 고생을 하냐고 농담도 해가며 농사일의 고달픔을 삭힙니다.

품앗이는 주로 여성들 간에 많이 이뤄집니다. 남성들의 일은 대부분 기계화 되어서 그다지 많은 손이 필요하지 않지만, 여성들의 일은 정교하다보니 기계화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마늘심기도 그 중 하나입니다. 마늘뿌리와 싹트는 부위가 반대로 심겨지면 발아가 잘 안되어서 손으로 심어야 합니다. 한지형 마늘은 그래도 괜찮지만 난지형 남도마늘은 성장을 못 하기 때문에 아직도 기계보급이 자리 잡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늘 심을 철에는 사람들이 들판 곳곳에서 무리지어 일하는 모습이 제법 일터답습니다.

말이 쉬워 품앗이지, 품앗이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의 눈과 입과 손이 가장 무서우니 만큼 가족 내에서 이뤄지던 노동이 다른 사람과 함께 이뤄지다보니 조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야무지게 일처리가 되어야 마무리까지 일사천리로 갈 수 있으니 품을 얻는 날은 마음이 고됩니다. 찬물 한 가지면 무난하던 새참도 이것저것 정성을 다해야하므로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품을 얻는 모양을 통해 그 집의 처신을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살이의 정수가 품을 나누는 과정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지혜롭게 잘 처신하면서 남의 일을 잘 돌보는 사람의 집에는 일손이 넘쳐나고, 이기적으로 처신하면 일손을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특히 안주인의 사람 됨됨이와 품앗이와는 뗄 수없는 사이입니다. 새참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고 일 시간을 일손들에게 편리하도록 배려하는 지혜가 담겨야 평판이 좋게 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시골살이가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습니다. 문 걸어 닫고 내 취향에 맞는 사람하고만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원하든 원치 않든지 간에 누구와도 어울려야 하고 누구에게나 노출이 되는 삶을 살다보면 전부가 드러나고 평가받게 마련이니까요. 혹자들은 말합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만 살게 되고 마음통하는 사람끼리만 의견을 나누게 되면 한쪽만 보게 되는 한쪽 삶만 살게 된다고. 그러니 누가 뭐라 해도 품앗이 해가며 남의 이목에 신경쓰고 사는 삶에 건강함이 있는 것이지요. 지나치게 남의 이목에 신경을 많이 꽂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 균형감은 언제나 중요하니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고.

이 복잡하고 어려운 품앗이 문화도 이제 거의 막을 내려갑니다. 대부분의 일이 기계화 되거나 규모화 되어서 품이 필요 없는 작업이 많아지거나 아예 너무 많은 품이 필요해서 품앗이로 감당할 수 없어서이지요. 품앗이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은 소규모의 농사에 한해서인 셈입니다. 우리 마을도 이제 농사가 규모나 형태에 있어서 막바지 변화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은 내일 있을 마늘 멀칭 일을 위해 품을 구하느라 애를 썼습니다. 뻔히 무릎이 아프고 어지럼증이 있는 분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으니 품을 얻으러 갈 때의 미안함이며, 잘 해드린 것 하나 없는데 나 어려울 때 품을 달라고 하는 뻔뻔스러움에 뒤통수가 간지럽지만도 때를 맞춰 해야 하는 일 앞에서 작아지고 맙니다. 그러니 기계화가 덜 된 농사의 품앗이에 사람살이의 정수가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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