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42회

  • 입력 2015.11.06 14:04
  • 수정 2015.11.06 14:08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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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에 선택은 공화당 산동면책이 되었다. 마을마다 활동장들이 있었는데 대개 이장이나 새마을지도자였고 이들은 실제 행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읍이나 면에서 회의가 있으면 공화당 간부들이 함께 참여하여 매사를 결정하는 구조였다. 작은 단위의 당정협의회라고 할 수 있었다. 그 해에 서울의 정치권에서는 유신헌법을 바꾸자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야당과 시민사회에서 이년 넘게 지속된 유신체제를 정상적인 체제로 되돌리자는 주장을 펼치자 시골에서도 그에 대해 말이 나오곤 했다. 많지는 않아도 유신을 반대하는 야당 성향의 인사들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면소재지에 있는 천주교 공소에 다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농민회를 만들었는데 그들이 주로 반정부적인 주민이었다. 선택의 집에서는 작은 어머니가 공소에 다니고 있었다. 무엇에 반했는지 가족 중에 아무도 다니지 않는 교회를 열성으로 다니는 것이었다. 본래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작은어머니를 선택은 그저 한 집에 살며 일이나 하는 행랑 식구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세월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다. 하루는 작은어머니가 교회에 갔다 오더니 철필로 긁은 유인물 한 장을 받아왔다. 정부의 농업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에다 유신헌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유인물이었다.

▲ 일러스트 박홍규

“이걸 누가 주던가요?”

선택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물었다.

“공소에 오는 아재덜이 나눠주더만. 주길래 그냥 받아왔지.”

“담부터는 절대로 받지 마세요. 이것덜이 순박한 시골사람덜한테 이게 뭔 짓이여. 나쁜 놈의 자식들.”

선택이 언성을 높이자 작은어머니는 금세 풀이 죽어 고개를 움츠렸다. 선택은 잠시 고민했다. 당장 경찰서로 가져가 발고를 할까 생각하다가 이번은 일단 없던 일로 넘기기로 했다. 기실 누가 그런 짓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그들 역시 이리저리 선택과 얽힌 이들이었다. 함께 청년회를 하던 사람들도 있고 초등학교 동기생도 있었다. 나서서 신고를 하기에는 떨떠름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과 부딪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 해 겨울에 대통령은 갑자기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현행 유신헌법을 바꾸자는 주장이 있는데 정말 국민들이 바꾸기를 원하는지 투표로 알아보겠다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에 나온 대통령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 국민투표는 비단 현행 헌법에 대한 찬반뿐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다. 만약 국민이 유신헌법의 철폐를 원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고 즉각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이다.”

대통령의 담화는 서울뿐 아니라 작은 시골마을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야당에서는 정치쇼라고 비난하며 투표를 중지하라고 난리를 쳤지만 공화당 조직은 재빠르게 돌아갔다. 당장 면사무소에서 회의가 열렸다. 공화당 면책인 선택이 주도하는 자리였다.

“이번 국민투표를 계기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대통령 각하가 밤잠을 안 자고 새마을운동과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걸 누구나 아는데, 글고 온 국민이 찬성한 유신헌법을 왜 바꾸자고 저 지랄들을 하는 겁니까? 하여튼 당에서 내려온 지침은 우선 투표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당에서 주장하는 투표 거부에 맞서서 전 면민이 투표에 참가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물론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당연하고요.”

선택이 주먹을 흔들며 말을 마치자 면장이 뒤를 이었다.

“우리 행정기관에서도 많은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별 걱정은 안 해도 될 겁니다. 특히 이번 투표는 참가하지 않으면 처벌을 한다고 주민들에게 은밀하게 소문을 내주십시오. 솔직히 투표를 안 한다고 처벌할 근거는 없지만 일단 그렇게 소문이 퍼지면 투표율이 올라갈 겝니다.”

선택은 당에서 내려온 ‘유신새야’라는 노래를 날마다 틀어댔다. ‘파랑새’라는 노래에서 가사를 바꾼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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