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쥐잡기②] 쥐약은 쥐만 먹어야 하는데…

  • 입력 2015.11.01 12:09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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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아부지는 쥐약을 놓는 날 저녁이 되면 우선 닭장 문부터 단단히 잠갔다. 그런 다음 항아리 뚜껑에다 밥 한 그릇을 쏟고서 배급받은 쥐약을 부은 뒤 댓가지로 저어서 정성껏 섞어 버무렸다. 어린 내가 지켜보기에도 그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이 자못 엄숙하였다. 아부지는 닭장 문을 단속하는 일부터 쥐들의 밥을 제조하고 또 그것을 군데군데에 차려놓는 일에 이르기까지 내내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참여시켰다.

“따러오너라!”

아부지가 푸르스름하게 물이 든 약밥(?)을 들고 일어섰다. 나는 사금파리나 찌그러진 양철그릇이나 판자조각 따위, 밥상이 될 만한 것들을 챙겨들고 뒤를 따랐다. 아부지가 뒤란의 이 구석 저 구석, 그리고 남새밭 들머리며 언덕 밑 등 서생원이 다닐만한 곳을 턱짓으로 가리키면, 내가 거기다 판을 마련하고, 아부지는 쥐약을 덜어서 그 위에 ‘최후의 만찬’을 차렸다.

“아부지, 그란디 여그다가 쥐약을 놓으면…”

아부지가 급히 ‘쉿!’ 하면서 내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큰소리로 말했다.

“오늘 겁나게 맛난 음식을 얻어갖고 왔는디, 우리만 묵을 수 있겄냐, 양상군자하고도 나눠 묵어야제.”

아부지는 쥐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여기는 듯했다. 아무리 그렇기로 ‘양상군자’같은, 당시엔 나도 모르던 그 어려운 말까지 녀석들이 참말로 알아들었을까? 아부지는 나와 동생들에게 구충제를 먹일 때에도 ‘회충약’ 따위의 말을 절대로 입에 올리지 못 하게 하였다. 그러고선 큰소리로 “아부지가 징하게 맛난 것을 갖고 왔응께 자, 시방부터 묵자!”, 그랬다. 뱃속의 기생충들이 그 말에 속았던지 이튿날 아침이면 약에 취해서 술술 잘 빠져나와 주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눈곱도 다 떼기 전에 아부지와 함께 투약 장소를 돌면서 남은 쥐약과 죽은 쥐들을 수거하였다. 아부지는 아예 뒷짐을 진 채로 “약이 묻은 밥알은 한 톨도 흘려서는 안 되는 것이여”, “땅을 깊이 파고 잘 묻어야 되니라”, “약 묵고 죽은 쥐를 다른 짐승이 묵으면 고놈도 죽어분당께”… 따위의 잔소리만 원 없이 늘어놓았을 뿐, 모든 일을 나에게 하도록 시켰다. 그러니까 애당초 쥐약을 놓을 때부터 나를 동참시켰던 것은 순전히 나를 부려먹기 위한 아버지의 계략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다음 번 ‘쥐 잡는 날’ 행사부터는, 아예 날더러 동생을 데리고 가서 쥐약을 놓으라 하고선 당신은 술을 마시러 나가셨다.

우리 집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으나 ‘쥐 잡는 날’ 행사가 끝나고 나면, 적어도 동네에서 한두 마리 이상의 개나 고양이가 쥐약을 먹고 죽는 사건이 어김없이 발생하였다. 아니, 쥐약을 직접 먹었는지, 약 먹고 죽은 쥐를 먹고서 죽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 쥐약이라는 놈을, 쥐가 아닌 사람이 먹고서 목숨을 끊는 일이,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기간에만도 두 건이나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내 동무 종석이네 개가 죽었다. 쥐약 먹고 죽었다. 이름이 ‘도그’였다. ‘도꾸’라고도 불렀다. 왜 개 이름을 걸핏하면 ‘도그’나 ‘도꾸’라고 짓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개가 죽던 날 종석이는 하루 종일 울었다. 나하고 같이 소 먹이러 갈 때면 늘 데리고 나왔기 때문에 나한테도 조금은 정이 든 녀석이었다. 죽은 개를 종석이네 밭 귀퉁이에다 묻었는데 우리 집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밭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개를 묻은 그 어름에서 불빛이 보여서 내려가 봤더니 재필이 형을 비롯한 동네 청년 다섯 명이 파묻었던 개를 도로 꺼내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엄포를 놓았다. “내장을 빼내고 푹 삶으면 사람이 묵어도 암시랑토 안 하그등. 그랑께 너, 어른들한테 가서 일르지 말어. 말하기만 해봐.” 재필이 형이 내 눈앞에 주먹을 들어보였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 하고 뒤챘다. “약 묵고 죽은 쥐를 다른 짐승이 묵으면 고놈도 죽어분당께”… 아부지의 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재필이 형네 집으로 가서 그 형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펴보았다. 한참 만에 재필이 형이 기지개를 켜면서 마당으로 나왔다. 정말 암시랑토 안 했다.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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