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새콤한 예산 사과에 반하다

  • 입력 2015.10.30 13:51
  • 수정 2015.11.08 14:43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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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박경철 기자(오른쪽)가 지난달 26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 위치한 ‘애플트리’ 과수원에서 농장주인 조철희씨와 함께 수확한 후지 사과를 옮기고 있다.
▲ 잘 익은 사과를 고르는 것부터 난항이다. 조씨의 설명에 따라 사과를 살펴보는 박경철 기자.
▲ 박경철 기자가 과수선별기에 수확한 사과를 올려놓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드라마 혹은 영화를 통해 농활을 처음 접했던 이미지는 젊은 남녀 대학생들이 떼를 지어 농촌으로 가 환하게 웃으며 일하는 낭만적인 모습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7년, 기자에게도 첫 농활의 기회가 왔다. 농활지는 포도로 유명한 충남 천안의 입장. 비닐하우스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거봉의 잔 알을 제거하기 위해 구부정한 자세로 사투를 벌이던 기억이 여전히 강렬하다.

지난달 26일 첫 농활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충남 예산 신암면 위치한 조철희(42)씨의 친환경 사과농가 ‘애플트리’를 찾았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붉은 빛으로 탐스럽게 물든 사과다. 하루 이틀 전 살짝 내린 비로 안개와 미세먼지가 씻겨간 터라 사과색이 더욱 고왔다. 쌀쌀한 가을바람에 움츠러든 가슴이 온기가 불어넣어진 듯 따듯해졌다.

“아침도 못 먹을 정도로 오전부터 분주했다”는 조씨가 창고를 겸한 사과선별 작업장에서 기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추석이 오래전에 지난 터라 사과 수확철이 끝난 줄 알았지만 조씨는 “추석용 사과(홍로)가 아닌 후지(부사) 사과는 10월말에서 11월초에 수확한다”면서 “서리를 두 번 맞아야 더 맛이 있다”고 했다. 조 씨는 빈 노란박스가 가득 실린 과수를 옮기는 농기계에 시동을 켜며 자연스럽게 장갑을 건넸다. 이어 사과농사는 한 해 동안 끊임없이 일손이 필요한 농사라고 설명했다.

설 명절 전에 불필요한 나무나 가지를 골라 전지와 전정작업을 하고, 3월말부터 4월까진 겨울에 사과나무 사이사이에서 동면하고 있는 해충과 세균을 없애기 위해 황으로 1차 소독을 한다고 했다. 황으로 소독을 하는 이유는 약한 산성을 띄고 있는 황이 과수엔 보약이라고 알려져 있어서다. 4월말이 되면 수정을 하는데 1차는 바람에 의해 꽃가루가 날리는 자연 수정을 하고 2차로 과수와 과수 사이에 양봉 벌통을 갖다놔 수정을 한다. 5월 10일경부터 중심과를 뺀 나머지를 솎아주면서 5월말까지 10일 간격으로 살균·살충제를 뿌리고 칼륨·칼슘 등의 영양제도 준다.

사과 농가의 한해살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드디어 수확 작업이 시작됐다. “아무 사과나 턱턱 따면 사과나무가 손상될 수 있다”며 조씨 가 능숙하게 잘 익은 사과를 살짝 돌려 따는 시범을 선보였다. 보기엔 쉬워보였지만 막상 사과를 따려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잘 익은 사과를 고르는 것도 어려웠지만 사과나무 가지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파과를 만들지 않으려는 생각에 조심스러워진 손길이 더욱 버벅대는 모양새가 됐다.

아니나 다를까 “키가 너무 커서 밭작물하고 맞지가 않어”라는 조 씨의 핀잔이 고요한 사과밭에 메아리쳤다. 데자뷰다. 1997년 첫 농활지 하우스에서 들었던 소리를 다시 듣게 된 것이다. 잠시 공황상태에 빠졌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손가락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진땀을 흘리며 사과 꼭지가 쏙 빠진 파과를 몇 개 만들고 나서야 조금 익숙해졌다. 조 씨가 설명한 좋은 사과는 햇빛을 정확하게 받아서 색이 잘 나오고 중력에 의해서 꼭지가 하늘을 보고 형이 동그랗고 정확하게 열려 있는 것이다. 이내 좋은 사과를 자연스럽게 따내게 되니 굴하지 않고 해냈다는 생각에 쾌감이 차올랐다.

사과 수확과 더불어 조 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6월이 되면 사과나무 사이의 풀과 더불어 예초기로 사과나무 가지를 정리한다. 조 씨는 제초제를 쓰지 않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저농약 친환경 농가 인증도 받았다. 조씨는 “올해 말이면 사과에 대한 저농약 인증제가 풀리는데 이에 대한 연장이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며 “GAP(생산물이력관리제)로 바꾼다고 하는데 개인농가하고는 거리가 먼 정책”이라고 답답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8월말 9월초엔 추석용 홍로를 다 따고 이어 부사를 수확하면 감사한 마음을 담은 감사비료도 준다고 했다. 사과를 수확하는 것이 나무의 입장에서 출산의 고통과 똑같다는 것이 조씨의 설명이다.

수확을 마친 사과를 손수레에 실어 선별 작업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컨베이어 벨트에 사과를 올려놓으면 자동으로 무게를 측정해 분류하는 과정이다. 컨베이어 벨트 속도가 빠르다 보니 올려놓은 사과와 사과 사이에 빈공간이 자꾸만 생긴다. 아까 들은 핀잔이 기억나 자꾸만 눈치가 보여 사과를 떨어트릴 것만 같았지만 실수는 없었다.

선별 작업이 끝나고 직접 수확한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면서 왜 예산 사과가 유명한지 깨달았다. 단단한 과질에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에 깜짝 놀랐던 것이다. 첫 농활에서 맛봤던 입장의 거봉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처럼 예산의 사과 맛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만 같았다. 첫 농활의 추억을 안고 간 농활치고는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안됐던 터에 힘이 필요한 겨울철에 다시 한 번 들를 것을 기약하며 기자가 뛰어든 농활을 마쳤다.

박경철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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