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41회

  • 입력 2015.10.30 13:36
  • 수정 2015.10.30 13:39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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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개량사업을 기점으로 선택은 마을에서 단순한 새마을운동의 지도자 이상이 되었다. 호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마을 전체가 한꺼번에 지붕을 바꾸는 일은 단순한 독려로 될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돈이 문제였다. 단돈 몇 만원이라도 돈을 여축해두는 집은 거의 없었고 지붕을 개량하려면 정부에서 융자로 지원해주는 돈 외에 자기 돈을 얼마간이라도 융통해야 했는데 그 마저 어려운 집이 여럿이었다. 선택은 그런 집에 자신이 무이자에 가까운 돈을 빌려주어 결국 그 해에 온 동네의 지붕을 몽땅 슬레이트로 바꾸어 놓았다. 거의 전쟁처럼 진행된 일이었다. 주민들을 동원하여 울력하듯이 한꺼번에 두세 집씩 공사를 해서 불과 몇 달 만에 일을 마치자 또 한 번 시곡마을은 지붕개량 선도마을로 포상금을 받았다.

▲ 일러스트 박홍규

선택의 하루는 언제나 마을에 새로 지어진 마을회관에서 시작되었다. 날이 새기 무섭게 마을 앰프에서 새마을노래가 터져 나왔다. 날마다 들어서 그런지, 원래 노래가 좋아서였는지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라고 노래가 시작되면 선택은 저도 모르게 힘이 나는 것만 같았다. 노래를 연속해서 두 번 틀고는 곧바로 마이크를 들었다.

“에, 주민 여러분. 오늘은 마을 공동퇴비를 작업하는 날입니다. 오늘도 식량 증산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대통령 각하의 뜻을 받들어 각 가정에서 한 사람씩 낫을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런 식의 방송이 매일 되었다. 딱히 전해야 할 일이 없는 날에도 선택은 마이크를 잡았다. 때로는 자신이 읽고 좋은 내용이다 싶은 신문의 사설을 줄줄이 읊어대기도 했다. 아침의 첫 일과를 마치면 이어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산뜻하게 바뀐 지붕들을 볼 때마다 선택은 가슴이 벌렁거리곤 했다. 일요일마다 학생들이 동원되어 깨끗하게 쓸어대는 넓은 마을길을 걸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일이 자신이 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발 디딘 곳이 현실이 아니고 공중에 떠있는 느낌조차 났다. 겨우 두어 해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 있으리라고는 선택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모두가 요술과도 같은 새마을운동 덕분이었다. 선택이 마을을 돌아볼 때는 대개 아침을 하느라 연기가 피어오르거나 일을 시작하려 남정네들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저마다 고개를 꾸벅하며 인사를 하였다. 언제부턴가 마을 사람들이 선택을 대하는 품이 달라져 있었다. 전에는 너나들이를 했던 동년배들조차 선택을 어렵게 여기는 게 역력했다.

“지도자님, 오셨어유? 날마다 애쓰셔유.”

인사를 하는 아낙네들이 먼저 변했다. 마을에서는 나이가 많건 적건 선택을 대하는 아낙들은 마치 세금 걷으러 온 공무원 대하듯이 깍듯했다. 언제부턴가 선택은 누구 아버지가 아니라 지도자님이 되어 있었고 이제는 혹 다른 호칭으로 부를라치면 선택 먼저 기분이 잡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내 마을 사람 전체에게 선택은 지도자님이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호칭 이상이었다.

“장용이는 어째 안 보이는 게요?”

선택이 묻자 아낙은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머리를 조아렸다.

“저 냥반이 어제 술을 많이 먹고 오더니 안즉도 못 일어나네유. 할 말 있으시면 들어가서 깨울까유?”

선택이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끌끌 찼다. 요즘 들어 선택은 마을에서 늦잠을 자는 사람을 제일 못마땅해 했다.

“해가 닷 발이나 올라왔는데 아직도 이불속에 있단 말유? 아짐씨, 새마을운동 삼대 원칙이 뭔지 아시쥬?”

내친 김에 선택은 장용이의 버릇을 고치자고 생각하며 아낙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글씨, 지도자님이 근면, 자조, 협동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하자 선택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게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대통령 각하께서 허신 말씀이요. 글고 첫 번째 가는 근면이 무어요? 부지런한 게 젤로 중요하다 이 말입니다. 근데 농사꾼이 이렇게 늦잠을 자서 언제 잘 사는 농촌을 만들겠소, 에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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