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쥐잡기①] “쥐를 없애자!”

  • 입력 2015.10.25 11:22
  • 수정 2015.11.01 12:1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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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나는 마을회관 벽면의 게시판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서 새로 나붙은 포스터를 쳐다보며 나름으로 고민에 빠졌다. “쥐를 없애자!”라는 글귀 아래 화살 아니면 무슨 꼬챙이 같은 것이 쥐의 몸통을 관통하고, 그 아래로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형상의, 요즘으로 치면 혐오 게시물 판정을 받을 만한 포스터였다. 그런데 나를 고민스럽게 한 것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쥐의 모습도, 포스터 맨 아래쪽의 ‘농림부’라는 글자 바로 위까지 뚝뚝 듣는 형상의 핏방울도 아니었다. 한글을 어느 정도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없애자’라는 그 대목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없다’라는 말이야 흔히 써왔지만 ‘없앤다’라는 말은 그 시절 내 고향 사람들의 언어생활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던 말이었다. 마침 길을 지나가던 4학년 용길이 형한테 물었다.

“성님, 요것을 뭣이라고 읽어야 쓰겄능가? ‘쥐를…어배자’?”

“비잉신, 그것도 몰르냐? 이번 공일날이 쥐 잡는 날잉께 동네에 있는 쥐들을 기냥 몽창 잡어서 콱 쥑에뿔자, 그 말 아녀. 나 바뻐서 간다 이.”

용길이 형이 피잉 자리를 떴다. 뒷날 알고 보니 용길이 형은 5학년 1학기 때까지도 국어책을 잘 못 읽어서 복도에서 단골로 벌을 서는 처지였다. 어쨌든 요즘도 쥐 얘기만 나오면 선혈이 낭자한 포스터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여덟 살 즈음의 내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쥐잡기 운동’은 그야말로 범국민적으로 실시되었다. 당시 정부에서 내다붙인 “일시에 쥐를 잡자”는 표어가 말해주듯 쥐잡기는 또한 동시적으로 이뤄졌다. 전 국민이 한 날 한 시에 쥐약을 놓는 것이 효율적이었는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일시에 쥐잡기를 해야 그 결과를 수합하기 쉽다는, 관료들의 숫자놀음의 편의를 위한 목적 때문은 아니었을까? 1970년 초에 실시된 쥐잡기 운동결과를 당시 신문이나 라디오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농림부는 1월 26일을 기해 전국적으로 동시에 실시된 쥐잡기 운동의 결과를 발표했다. 이 날 전국 540만 가구에서 일제히 쥐약을 투약한 결과 모두 4천1백54만1천1백49 마리의 쥐를 소탕한 것으로 집계 되었다. 우리나라의 쥐는 총 9천만 마리로, 쥐가 먹는 곡식의 양은 한 해 약 240만 섬이며…

이때 농림부 장관인지 내무부 장관인지 하는 사람이 대통령인 박정희에게 보고하여 칭찬을 받았다는 쥐의 마릿수는 이후 두고두고 전시행정의 표본 사례로 입방아에 올랐다. 전국에 살고 있는 쥐의 총 마릿수가 9천만 마리라는 통계 또한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의문일뿐더러, 쥐약을 먹여 잡은 쥐의 숫자를 맨 끝의 단 단위까지 9마리로 집계한 것을 보면 그 정밀함에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다.

그건 그렇고, 그 쥐라는 놈들은 초등학교 시절 내내 어린 우리에게도 골칫거리 한 가지를 안겨 주었다. 아무 날까지 쥐꼬리 한 개 이상을 학교에 갖다 내라는 과제가 떨어진 것이다.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동생 몫까지 두 마리의 쥐를 잡아야 했다.

나는 연 사흘 동안 어스름 저녁에 뒤란이며 남새밭이며 변소 뒤쪽을 옮겨 다니며 덫을 놓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렇다고 집안에 쥐가 없느냐면 그게 아니었다. 나와 형제들이 지내는 작은방의 중천장은 밤이 되면 아예 쥐들의 놀이터였다. 우리는 시끄럽다면서 베개도 던져보고 천장을 작대기로 툭툭 치기도 하였다.

숙제 마지막 날까지 한 마리의 쥐도 잡지 못 하였는데, 그 날 밤 어디서 무얼 훔쳐 먹었는지 배가 마름모꼴로 볼록해진 쥐 한 마리가 중천장을 질주하다가 뚫린 구멍에 빠져서 그만 이불 위로 툭 떨어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와 동생은 방안을 홀딱 뒤집어놓는 사투 끝에 고놈 한 마리를 결국 잡았다. 나는 그 쥐의 꼬리를 잘라 동생에게 주었다. 내 숙제는 어떻게 했느냐고? 그건 걱정 없었다. 내 짝인 아랫말 재훈이는 어촌계장 아들이었는데 녀석은 쥐꼬리 가져오기 숙제도 순전히 ‘어촌계식’으로 처리하였다. 나는 녀석으로부터, 오징어 다리를 잘 문질러 만든 짝퉁 쥐꼬리 하나를 건네받아 과제를 거뜬히 해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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