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40회

  • 입력 2015.10.25 10:59
  • 수정 2015.10.25 11:04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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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입을 떼어 우물거리기는 했지만 급하게 밀려가야 했으므로 대통령의 눈은 다음 사람에게 향했다. 똑똑하게 대답을 하지 못한 멍청함을 선택은 평생토록 자책하며 살았다. 대통령이 돌아가고 그 날 저녁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밥상이 차려졌다. 불고기에 소고기국이 올라왔고 처음으로 본 노랗고 긴 과일이 소쿠리 째 놓여졌다. 식사 전에 원장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일장연설을 했다.

“오늘 여러분이 다 보셨듯이 대통령 각하가 우리 연수원에 다녀가셨습니다. 저도 그 분이 가끔 미행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감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다시피 대통령 각하가 여러분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가시기 전에 저에게 불편한 것은 없는지, 난방은 잘 되는지, 교재는 어떤 걸 쓰는지 세심하게 묻고 애로사항을 바로 해결해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런 대통령 각하의 마음을 지역에 내려가서 널리 퍼뜨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특별히 우리 연수생들에게 소고기 백 근과 귀한 바나나를 하사하셨습니다. 저는 여러 나라에 견학을 다녀보았는데 이렇게 대통령이 직접 농민들과 만나 격려하고 하사품까지 내려주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같은 각하의 영도를 따르는 훌륭한 지도자로 거듭 나야 할 것입니다.”

▲ 일러스트 박홍규

원장의 목소리는 울음이라도 터져 나올 것처럼 떨렸다. 듣고 있는 연수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낮에 만나고 손을 잡았던 대통령을 생각하며 실제로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다. 선택도 가만히 손을 마주 잡아보았다. 어쩐지 잡았던 대통령 손의 감촉이 남아있는 듯했다. 긴 박수가 잦아들 무렵 누군가 일어나 비장하게 소리쳤다.

“대통령 각하의 뜻을 따라 새마을운동에 한 목숨을 바친다는 각오로 애국가를 부르고 나서 밥을 먹읍시다!”

여기저기서 옳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가 애국가를 선창했고 원장이 감동한 표정으로 따라 부르자 이내 장내는 우렁찬 애국가 소리로 뒤덮였다. 선택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 밀려왔다. 감동은 진한 전염력을 가지고 모두에게 퍼져나갔다. 노래를 마칠 무렵에는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때 바로 선택의 움직일 수 없는 결심이 섰다. 새마을운동에 남은 생을 바치겠다는 결심이었다.

새마을 연수를 다녀온 선택은 더욱 맹렬하게 마을 일에 앞장섰다.

정부에서 몇 년 전부터 추진하고 있던 사업이 지붕개량사업이었다. 대통령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초가라고 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지방에라도 가게 되면 길에서 보이는 집은 우선적으로 짚을 걷어내고 알록달록한 페인트를 칠한 함석이나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꾼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시곡 같은 산골 마을은 지붕 개량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두어 집을 빼고 전부 해마다 짚으로 이엉을 엮어 얹는 초가였던 마을에 갑자기 지붕을 개량하는 사업이 벌어지게 된 데는 연유가 있었다.

“지금 제일 시급한 게 지붕을 바꾸는 일입니다. 이게 사실 정부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일이에요. 식량 자급하고도 연결되니까.”

군의 새마을협의회에서 회의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 선택은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식량 자급이라는 말은 대통령이 제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새마을운동의 지상과제였다. 읍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통일벼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건 아시지요? 내년에는 전국이 다 통일벼로 통일이 될 겁니다. 당연히 우리 읍도 전부 다 통일벼를 심을 거구요. 아끼바리보다 수확량이 곱절도 넘으니까 그야말로 식량 혁명이지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통일벼가 워낙 키가 작아서 짚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엉을 엮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읍은 사실 상 거의 모든 집이 초가인데 당장 이엉을 못 엮으면 큰 난리가 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가을이 오기 전에 우선적으로 지붕을 개량해야 한다, 이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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