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은 쌀값 전쟁중 “풍년이 원망스럽다”

철원평야 오대쌀 생산 농민 3인의 ‘쌀값 전쟁’ 이야기
농협 적자폭 올해 더 커져 … 시장격리, 지금 시행해야

  • 입력 2015.10.18 14:37
  • 수정 2015.10.18 20:25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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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밥맛 좋기로 손꼽히는 철원 오대쌀 수확이 거의 끝났다. 1년의 수고를 수확의 기쁨으로 바꿔야 하는 이 시기, 농민들은 “눈으로는 풍년을 즐기지만 마음으론 풍년을 원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원은 지금 ‘쌀값 전쟁’ 중이기 때문이다.

벼농사 외에 ‘하우스 농사·부업’ 시작하는 농민들

철원 동송에 있는 농민주유소에 세대별 대표인양 40대부터 60대 농민 3명이 모였다. 모두 벼농사가 주업이다.

가장 젊은 농민 송정만(43) 씨는 13년 전 고향에 내려와 “친환경이 살 길”이라는 생각에 자연농업학교 교육까지 받으면서 친환경 벼 생산에 전념했다. 그러나 올해 관행으로 벼농사를 지었고 3년 전부터는 부업이다, 생각하고 펜션사업도 시작했다. 지금은 소득면에서 부업이 주업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역농협 감사 등 농사 외에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농민 김학진(59) 씨는 벼농사만 짓다가 몇 년 전 하우스농사도 시작했다. “하우스 농사, 얘기도 꺼내지 말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몇몇 작목을 심었지만 신통치 않은 탓이다.

▲ 사진 왼쪽부터 정영섭, 김학진, 송정만 씨. 철원평야 오대쌀 생산 농민인 이들은 “올해 쌀값 하락은 시작부터 불안하다”고 입을 모은다. 농민들이 원하는 쌀을 전량 수매하는 철원지역 농협은 지난해부터 적자폭이 커져 올해 수탁물량을 줄이는 대신 매취물량보다 가격을 크게 낮췄다.

농업문제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농민 정영섭(62) 씨는 “정부가 쌀소비량이 줄어 생산을 줄여야 한다는 말은 여론을 호도할 뿐”이라며 “수입쌀 때문에 쌀이 넘치는 것이지, 우리쌀만으로는 100% 자급 못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3명의 농민들은 “그나마 가격이 좋다는 철원 오대쌀도 요즘 영 맥을 못 추고 있다”며 쌀값걱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학진 씨는 당장 벼 값이 떨어진 게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농협 벼 값이 kg당 1,620~ 1,630원 했는데 올해 1,560원으로 결정 났다. 농자재 값은 한참 올랐는데 쌀값이 떨어지니 환장할 노릇이다. 철원은 그나마 농민들이 내는 쌀은 다 받아줘 다행이다 싶지만, 지난해에는 매취와 수탁판매량을 50:50으로 하더니 올해는 60:40으로 수탁 비율을 낮췄다. 대신 수탁수매가를 지난해 보다 훨씬 낮춰 kg당 1,220원이 됐다. 차후에 쌀값이 오르면 매취가격에 맞춰준다는 말인데, 지난해에도 수탁은 다 채워서 못 받았고, 올해는 더더욱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

송정만 씨는 “올해는 민간 방앗간에서 쌀을 안 산다. 시중 재고량 때문에 잘 안 팔릴 거라는 전망 탓도 있지만, 농협이 지금 사들인 쌀을 내년 초에 일반 정미소에 풀 걸 기대하기 때문이다. 지금 시세대로 사는 것 보다 농협이 kg당 1,500원에 밀어낼 때 사면 품질도 문제없고 값도 싸니까. 누구 탓을 할 수도 없고,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대책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농민들도 개인적으로 쌀을 팔고 있다. 예전에 20kg 한 포대에 6만원 이하로 팔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농민들도 이젠 5만원에 개인판매를 한다. 시세를 낮추는 것 같아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방법이 없다. 이렇게 파나 저렇게 파나 철원 오대쌀이 팔려나가니 그 여파로 농협쌀은 또 발이 묶이는 셈이다.”

송 씨 또한 펜션을 다녀간 손님들에게 문자로 홍보하고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영섭 씨는 “올해 쌀값이 떨어지다 보니 같은 쌀도 포장을 바꿔 팔고 있다”고 쌀값전쟁의 단면들을 지적했다.

철원엔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소문난 쌀을 수매하는 ‘새마을금고’가 있다. 그런데 지난해만큼 쌀 수매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쌀시장이 막혀 있다 보니 매취한 쌀은 예년의 포장지로 매취가격을 반영해 팔지만, 농민들한테 개별로 사들인 쌀은 다른 포장지로 싸게 파는 일종의 이중가격제를 본의 아니게 시행하고 있다. 같은 쌀을 비싸게 사간 사람의 항의를 견디지 못한 궁여지책인 것이다.

시장격리 지금 아니면 늦다

농민들은 지난해 보다 작황도 좋고 특히 도정률이 월등히 높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농협의 적자폭이 훨씬 커질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 씨는 “농협의 적자폭이 심각한데, 올해 쌀값 시세를 보니 이를 되메우기는 어렵고 그저 적자폭을 줄이면 성공일 것 같다. 그런데 초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작년엔 재고물량을 완만히 풀면서 속도조절 할 여유가 있었는데, 올해 농협들이 적자도 누적돼 있고 거기에 수량까지 많으면 조기에 급히 쌀을 방출할 수 있다”면서 “2014년 쌀에 대해 정부가 미적미적 하다가 쌀값 안정 시기를 놓쳤다. 올해엔 반드시 초반에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 이제 쌀값은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도무지 방법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남쪽의 다수확 쌀 시장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쌀값이 좋다는 철원쌀이 이 지경이면 남쪽 상황은 더 심각할 텐데…. 오렌지 수입을 하면 강원도 감자 농사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쌀 무너지면 농업 전체가 무너진다는 무서운 연쇄작용을 다시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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